오늘날 인쇄되는 모든 성경은 대부분의 독자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는 사람들, 곧 서기관들에게 기대고 있습니다. 이천 년이 훨씬 넘는 세월 동안, 성경의 한 책을 사본으로 가지는 유일한 방법은 누군가가 다른 사본을 보고 한 글자 한 글자 손으로 베껴 쓰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읽는 성경의 정확성은 상당 부분 그 사람들이 얼마나 일을 잘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의 직업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 서기관들은 여러 해 동안 학교에 다녔고, 왕과 신전과 상인들을 섬겼습니다. 이스라엘은 더 작았고 그 알파벳은 더 단순했지만, 양상은 비슷했습니다. 서기관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단어는 *sofer*로, 세고 기록하는 일과 관련된 어근에서 왔으며, 성경은 왕실 서기관 여러 명의 이름을 밝힙니다(사무엘하 8:17). 요시야 왕 때, 새로 발견된 “율법책”을 왕에게 읽어 주는 이가 서기관 사반입니다(열왕기하 22:8–10). 사반의 집안은 예레미야서에 거듭 나옵니다. 그의 아들 아히감은 예레미야를 보호하고, 또 다른 아들 그마랴는 성전에 방을 가지고 있었는데, 바룩이 거기서 예레미야의 두루마리를 읽습니다(예레미야 26:24, 36:10). 서기관들은 권력의 중심 가까이에 서 있었습니다.

고고학은 그들의 흔적을 찾아냈습니다. 왕정 후기의 점토 인장 자국(불라)들에는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과 일치하는 이름들이 새겨져 있는데, 예루살렘 다윗성 발굴에서 발견된 “사반의 아들 그마리야후의 것”이라고 적힌 것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골동품 시장에서 사들인 또 다른 것에는 “서기관 네리야후의 아들 베레크야후의 것”, 곧 네리야의 아들 바룩의 것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것은 통제된 발굴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진품인지 의심합니다. 이런 인장들은 예레미야 32:9–14에 묘사된 일의 물질적인 측면입니다. 거기서는 매매 증서를 쓰고, 봉인하고, 증인을 세우고, “오랫동안 보존되도록” 질그릇에 넣어 둡니다.

에스라: 교사로서의 서기관

포로기 이후에 이 말은 뜻이 넓어졌습니다. 에스라는 “모세의 율법에 능숙한 서기관”(에스라 7:6)으로 소개되며, 그는 “야훼의 율법을 연구하고 실천하며, 이스라엘에게 규례와 법도를 가르치기로 마음을 굳힌” 사람이었습니다(에스라 7:10). 느헤미야 8장에서 그는 나무 단 위에서 백성에게 율법을 소리 내어 읽고, 레위인들은 백성이 그것을 깨닫도록 돕습니다.

여기서 서기관은 필사자일 뿐 아니라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학자이자 교사입니다. 카럴 판데르 토른(Karel van der Toorn)은 이것이 히브리 성경이 어떻게 모양을 갖추었는지를 이해하는 열쇠라고 주장합니다. 본문을 베낀 바로 그 집단이 본문을 연구하고, 배열하고, 해석하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에 이르러 “서기관들”(복음서 그리스어로 grammateis)은 율법 전문가로 인정받는 집단이었고, 흔히 바리새파 사람들과 함께 언급됩니다.

기원전 180년 무렵 예루살렘의 유대인 교사였던 벤 시라는 서기관의 소명을 묘사했습니다(집회서 38:24–39:11). 그는 농부나 옹기장이와 달리 서기관에게는 연구할 여유가 있다고 말합니다. 서기관은 “옛사람들의 모든 지혜를 찾고 예언에 마음을 쏟는다”는 것입니다.

일의 도구들

  • 필기 재료. 사해 두루마리의 대부분은 가죽이나 양피지에 쓰였고, 일부는 파피루스에 쓰였습니다. 쿰란에서 나온 대이사야 두루마리는 열일곱 장을 끝과 끝을 이어 꿰맨 것으로, 길이가 7미터가 넘습니다.
  • 잉크와 펜. 그을음과 고무를 섞은 안정된 탄소 잉크를, 끝을 뾰족하게 깎은 갈대로 썼고, 칼로 그 끝을 날카롭게 유지했습니다. 예레미야 36:23은 여호야김 왕이 두루마리를 자르는 데 쓴 “서기관의 칼”을 언급하고, 에스겔 9:2는 “허리에 서기관의 먹통을 찬” 사람을 언급합니다.
  • 줄 긋기와 배치. 서기관은 쓰기 전에 가죽에 희미한 안내선을 긋고, 글자들을 그 선에 매달듯이 썼습니다. 본문은 단으로 이어졌고, 빈칸이 단락의 끝을 표시했습니다. 이 방식은 후대 히브리어 사본들의 “열린” 단락과 “닫힌” 단락으로 남아 있습니다.

사해 두루마리가 보여 주는 서기관들의 습관

대략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 사이에 베껴진 사해 두루마리는 서기관이 한 일의 실제 예를 수백 개나 보여 주며, 에마누엘 토브(Emanuel Tov)는 이것을 자세히 연구했습니다. 서기관들은 자기 실수를 고쳤는데, 빠진 글자를 줄 위에 쓰고 필요 없는 글자에는 점을 찍어 표시했습니다. 많은 두루마리는 베낀 뒤에 점검을 받았고, 때로는 다른 사람의 손이 점검했습니다.

관행도 다양했습니다. 어떤 서기관들은 모음을 나타내려고 글자를 덧붙였고, 다른 이들은 더 간결한 철자를 지켰습니다. 후대 유대 율법이 토라 두루마리에 대해 정한 엄격한 규칙들은 그 뒤에 나왔습니다. 그 이야기는 정성 들여 베끼기: 토라 두루마리의 규칙에서 이어집니다.

거룩한 일로서의 필사

서기관들은 왜 그토록 조심했을까요? 부분적으로는 부주의한 서기관은 신뢰받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본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어지기도 했습니다. 신명기는 이렇게 경고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에 더하지도 말고 거기서 빼지도 말아라”(신명기 4:2, 12:32도 보십시오). 그 절이 처음부터 필사자들을 위한 규칙으로 의도되었든 아니든, 후대의 서기관들은 그렇게 읽었습니다.

기원후 1세기 말 무렵에 글을 쓴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유대인의 경전에 대해 “그토록 긴 세월이 흘렀는데도, 아무도 감히 한 음절도 더하거나 빼거나 바꾸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아피온 반박』 1.42). 이것은 변호하는 사람의 주장이며, 두루마리들은 더 복잡한 현실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이 말은 서기관들의 이상을 진술합니다. 본문은 받은 그대로 전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독자에게 이것이 뜻하는 것

구약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이 서기관들의 작업을 읽는 것입니다. 본문이 지금처럼 안정된 주된 까닭은 그들의 정성이고, 본문비평가들이 존재하는 까닭은 그들이 이따금 저지른 실수와 변경입니다. 우리는 올바른 이유로 본문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숙련되고 헌신된 사람들의 긴 줄이 자기 일을 잘 해냈기 때문이고, 이제 우리에게 그것을 확인할 만큼 충분한 그들의 사본이 있기 때문입니다.

참고 문헌

  • Avigad, Nahman. Hebrew Bullae from the Time of Jeremiah: Remnants of a Burnt Archive. Jerusalem: Israel Exploration Society, 1986.
  • Josephus. Against Apion 1.37–43. Translated by H. St. J. Thackeray. Loeb Classical Library 186.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1926.
  • Shiloh, Yigal. “A Group of Hebrew Bullae from the City of David.” Israel Exploration Journal 36 (1986): 16–38.
  • Tov, Emanuel. Scribal Practices and Approaches Reflected in the Texts Found in the Judean Desert. Studies on the Texts of the Desert of Judah 54. Leiden: Brill, 2004.
  • Tov, Emanuel. Textual Criticism of the Hebrew Bible. 3rd ed. Minneapolis: Fortress, 2012.
  • van der Toorn, Karel. Scribal Culture and the Making of the Hebrew Bible.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2007.
  • 집회서(벤 시라의 지혜서) 38:24–39:11.
  • 이 글의 성경 인용문은 이 글을 위해 직접 옮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