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은 한 권의 책이 아니라 하나의 도서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 안에 서른아홉 권의 책이 있다고 세고, 유대교 전통은 같은 글들을 스물네 권으로 셉니다. 그 안에는 율법, 역사, 시, 잠언, 예언, 그리고 일종의 편지도 들어 있으며, 여러 세기에 걸쳐 히브리어로, 몇몇 장은 아람어로 쓰였습니다. 누군가가 앉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써 내려간 책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책들은 도대체 어떻게 기록되었을까요?
이 글은 우리가 아는 것을 살펴봅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글쓰기는 어떠했는지, 가장 오래된 비문들은 무엇을 보여 주는지, 그리고 책들 자체가 자신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지입니다. 이 글은 성경이 어떻게 우리에게 전해졌는지에 관한 연재의 첫 번째 글입니다.
글을 쓰던 세계
글은 이스라엘이 생기기 훨씬 전에 발명되었습니다. 기원전 3200년 무렵에는 메소포타미아의 필사자들이 쐐기 모양의 기호를 점토에 눌러 새기고 있었고, 이집트의 필사자들은 상형 문자를 쓰고 있었습니다. 이 체계들은 기호가 수백 개였고, 배우는 데 여러 해가 걸렸습니다.
알파벳은 더 단순한 착상이었습니다. 자음 소리 하나에 기호 하나를 쓰는 것입니다. 알파벳은 기원전 2천년기에 셈어를 쓰는 사람들 가운데서 자라났고, 기원전 1000년 무렵에는 동지중해 연안에서 서로 아주 가까운 알파벳들의 한 갈래가 쓰이고 있었습니다. 페니키아 문자, 아람 문자, 히브리 문자가 그 가운데 있었습니다. 스물두 글자로 된 알파벳은 여러 해가 아니라 몇 주 만에 배울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글을 읽게 된 것은 아니지만, 이전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글에 다가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고학자들은 그 증거를 찾아냈습니다. 1908년 R. A. S. 매캘리스터(R. A. S. Macalister)가 발견한 작은 석회암 판인 게셀 달력은 대개 기원전 10세기 무렵의 것으로 보는데, 한 해의 농사철을 초기 형태의 히브리어로 나열합니다. 학생의 연습물일 수도 있습니다. 2005년에는 텔 자이트(Tel Zayit)에서 거의 같은 시기의 알파벳 목록(학생이 베껴 쓰는 종류의, 알파벳을 차례대로 적은 것)이 벽에 박힌 채 발견되었습니다. 2008년에 발견된 키르벳 케이야파(Khirbet Qeiyafa)의 토기 조각에 먹으로 쓴 비문은 히브리어일 수도 있는 가장 오래된 문서 가운데 하나이며, 학자들은 그것을 어떻게 읽을지 아직도 논쟁하고 있습니다. 기원전 8세기와 7세기에 이르면 증거가 크게 늘어납니다. 사마리아, 아랏, 라기스에서 나온 토기 조각에 적힌 행정 기록(오스트라카), 주인의 이름이 새겨진 인장들, 그리고 실로암 비문이 있습니다. 실로암 비문은 기원전 700년 무렵 예루살렘의 한 수로 터널에 새겨진 것으로, 양쪽에서 파 들어오던 두 무리의 일꾼이 만난 순간을 기념합니다. 1880년에 터널 안을 걸어 다니던 한 소년이 이것을 발견했습니다. 성경도 같은 공사를 기억합니다. 히스기야가 “못과 수로를 만들어 물을 성 안으로 끌어들였다”는 것입니다(열왕기하 20:20; 역대하 32:30과 비교해 보십시오). 비문은 왕의 이름을 밝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일꾼들 편에서 이야기를 전합니다. 바위를 사이에 두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부르는 목소리, 그리고 두 무리의 곡괭이가 만난 순간입니다.
이 비문들을 자세히 연구한 크리스토퍼 롤스턴(Christopher Rollston)은, 이것들이 나라 전역에서 표준화된 글자 모양과 철자와 숫자를 쓰는 훈련받은 필사자 계층을 보여 준다고 주장합니다. 글쓰기는 일종의 학교에서 가르치는 전문 직업이었고, 국가와 성전과 부유한 사람들이 사용했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의 책들이 기록된 것은 바로 이런 세계에서였습니다.
읽기는 전문가들을 넘어 얼마나 멀리까지 퍼져 있었을까요? 편지 한 통이 그 단면을 보여 줍니다. 1935년 영국의 고고학자 제임스 레슬리 스타키(James Leslie Starkey)는 예루살렘 남서쪽의 요새 도시 라기스의 폐허에서 토기 조각에 먹으로 쓴 편지 한 묶음을 발견했습니다. 이 편지들은 바빌론이 유다를 차지하기 직전의 마지막 몇 해, 기원전 588년 무렵의 것으로, 예레미야 34:7이 라기스와 아세가를 아직 버티고 있는 마지막 요새 도시로 꼽는 바로 그때입니다. 제3 편지에서 호샤야후라는 하급 장교는 자신이 편지를 읽지 못하리라고 넌지시 말한 듯한 지휘관에게 답합니다. 그는 야훼의 살아 계심을 두고, 지금까지 아무도 자기에게 편지를 읽어 줄 필요가 없었다고 맹세합니다. 군 장교는 자기 편지를 스스로 읽으리라고 기대되었고, 그렇지 못하다는 암시에 기분이 상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글을 쓰던 이웃들
이스라엘만 그랬던 것이 아닙니다. 그 이웃들도 아주 가까운 언어와 문자로 글을 썼으며, 그들의 비문은 성경의 책들이 그 곁에서 자라난 글쓰기의 종류를 보여 줍니다.
1868년 요르단의 디반(Dhiban)에서 발견되어 지금은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메사 비석은, 기원전 840년 무렵 모압 왕 메사가 세운 검은 현무암 기념비입니다. 히브리어와 아주 가까운 언어로, 메사는 자신이 어떻게 이스라엘의 지배를 벗어 던졌는지 자랑합니다. 그는 이스라엘 왕 오므리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를 이름으로 부릅니다. 성경은 같은 사건을 반대편에서 전합니다. 아합이 죽은 뒤 “모압 왕이 이스라엘 왕에게 반역했다”는 것입니다(열왕기하 3:5). 여기에 이스라엘 왕들과 같은 세기에, 같은 문자로, 일인칭으로 쓰인 왕실 역사가 있습니다.
1967년 요르단 계곡의 텔 데이르 알라(Tell Deir Alla)에서 네덜란드 발굴단이 붉은 먹과 검은 먹으로 뒤덮인 회반죽 조각들을 발견했습니다. 맞추어 보니, 그것은 민수기 22–24장에서 발락이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고용한 선견자 “브올의 아들 발람”이 본 환상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이 글은 기원전 800년 무렵의 것으로, 회반죽을 바른 벽에 쓰였습니다. 민수기의 사본이 아니며, 다른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러나 예언자의 말이 글로 적혀 전시될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발람이 요단강 양쪽에서 선견자로 기억되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손에 쥘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성경의 말
1979년 고고학자 가브리엘 바르카이(Gabriel Barkay)는 예루살렘 옛 성 바로 바깥의 케테프 힌놈(Ketef Hinnom)에서 무덤 동굴들을 발굴하고 있었습니다. 한 방에서 그의 발굴단은 돌돌 말린 아주 작은 은 띠 두 개를 발견했습니다. 목에 거는 부적이었습니다. 이것을 안전하게 펴는 데 여러 해가 걸렸습니다. 펼쳐서 읽어 보니, 거기에는 민수기 6:24–26의 제사장 축복과 거의 똑같은 축복이 들어 있었습니다. “야훼께서 너에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켜 주시기를. 야훼께서 그 얼굴을 너에게 비추시고 너에게 은혜를 베푸시기를…”
대부분의 학자는 이 은 두루마리를 바빌론이 예루살렘을 무너뜨린 기원전 586년 이전, 기원전 7세기 말이나 6세기 초의 것으로 봅니다. 바르카이와 동료들이 현대 영상 기술로 연구하여 2004년에 발표한 새 연구는 그 읽기와 이른 연대를 모두 확인했습니다. 이것들은 성경에도 나오는 말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장 오래된 물건입니다. 이것이 민수기가 그때 지금의 형태로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지는 않지만, 이 축복이 사해 사본보다 4세기 이상 앞서 우리의 것과 아주 가까운 말로 쓰이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책들이 스스로에 대해 말하는 것
구약성경은 무엇이 글로 적혔는지, 누가 적었는지를 자주 알려 줍니다.
- 모세는 율법과 기록을 적었다고 합니다(출애굽기 17:14; 24:4; 34:27; 신명기 31:9, 24). 그리고 “율법책”은 궤 곁에 놓입니다(신명기 31:26).
-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율법책에” 기록하고(여호수아 24:26), 사무엘은 왕권의 규례를 “책에” 기록합니다(사무엘상 10:25).
- 열왕기는 독자를 거듭 다른 기록들로 보냅니다. “이스라엘 왕들의 역대 실록”과 “유다 왕들의 역대 실록”인데, 이것들은 지금 남아 있지 않습니다.
- 예레미야 36장에서 예언자는 자신의 말을 필사자 네리야의 아들 바룩에게 불러 주고, 바룩은 그것을 두루마리에 적습니다. 여호야김 왕은 그 두루마리를 한 조각씩 잘라 불태웁니다. 예레미야는 그것을 다시 불러 주고, “그와 비슷한 말이 많이 더해졌습니다”(예레미야 36:32).
- 잠언 25:1은 “유다 왕 히스기야의 사람들”이 솔로몬의 잠언 모음을 베껴 적었다고 말합니다.
- 이사야는 큰 판에 메시지를 쓰라는 말씀을 듣는데, 아마도 지나가는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일상의 글씨로 쓰라는 것이었을 것입니다(이사야 8:1). 그리고 뒤에는 경고를 두루마리에 적어 앞으로 올 때를 위한 기록으로 남기라는 말씀을 듣습니다(이사야 30:8).
이런 기록들은 한 순간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을 보여 줍니다. 말이 선포되고, 기억되고, 적히고, 모이고, 베껴지고, 보태지고, 정리되었습니다. 예레미야 36장은 그 전체를 작게 보여 주는 그림입니다. 예언자가 입으로 한 말, 전문 필사자, 두루마리, 그리고 두 번째 판입니다.
말과 글이 함께
고대 세계에서 글은 기억을 대신하지 않았습니다. 둘은 함께 일했습니다. 성경이 처음으로 모세에게 기록하라고 말할 때, 그 둘을 한 문장 안에 묶습니다.
Then the LORD said to Moses, “Record this in a scroll to be remembered, and say it over to Joshua: I will wipe out the memory of Amalek completely from under the heavens.”
그 말은 두루마리에 들어가고, 여호수아의 귀에도 들어갑니다. 데이비드 카(David Carr)는 『마음 판에 쓰다』(Writing on the Tablet of the Heart)에서, 고대 근동 전역에서 교육이란 핵심 문서들을 외우는 것을 뜻했으며 글로 적힌 사본은 참고 자료와 교재 구실을 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신명기 자체도 부모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들에게 되풀이해 들려주고 문설주에 기록하라고 말합니다(신명기 6:6–9). 시편은 노래로 불렸고, 잠언은 가르쳐졌으며, 조상들의 이야기는 절기 때와 식탁에서 전해졌습니다. 이것들이 글로 적혔을 때에도, 글로 적힌 형태는 여전히 소리 내어 읽고 듣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정확성을 생각하는 방식에 중요합니다. 한 공동체가 외우고 낭송하는 본문은 한 사람이 쉽게 바꿀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 내용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공동체는 또한 세월이 흐르면서 어떤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을 조정할 수도 있습니다. 두 힘 모두 성경의 역사에서 볼 수 있으며, 둘 다 성경이 지금의 모습이 된 과정의 일부입니다.
책들은 언제 기록되었는가?
여기서 학자들은 의견이 갈리며, 정직하려면 그렇다고 말해야 합니다. 전통적인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견해는 책들을 그 이름이 붙은 인물들과 밀접하게 연결합니다. 토라는 모세, 사무엘서는 사무엘, 많은 시편은 다윗, 지혜 문학은 솔로몬, 예언서는 각 예언자입니다. 현대 학계의 많은 부분은 더 긴 저작과 편집 과정을 보며, 많은 책이 기원전 6세기와 5세기의 바빌론 포로기 동안이나 그 뒤에 최종 형태에 이르렀다고 봅니다. 윌리엄 슈니더윈드(William Schniedewind)는 『성경은 어떻게 책이 되었는가』(How the Bible Became a Book)에서, 히스기야와 요시야 같은 왕들이 다스린 기원전 8세기 말과 7세기가 핵심 시기였다고 주장합니다. 그때 유다에서 글쓰기가 가장 널리 퍼졌기 때문입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기원전 3세기와 2세기에는 히브리어 성경의 책들이 존재했고, 성경으로 베껴지고 있었으며, 그리스어로 번역되고 있었습니다. 기원전 3세기 이후의 것인 사해 사본에는 에스더서를 제외한 히브리어 성경의 모든 책의 사본이 들어 있습니다. 그때부터는 추측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사본이 있습니다.
문자의 변화
그 과정에서 한 가지 변화가 더 있었습니다. 왕정 시대의 히브리어는 지금 고대 히브리 문자(paleo-Hebrew)라고 부르는, 페니키아 문자와 사촌 격인 문자로 쓰였습니다. 포로기 이후 유대인들은 점점 더 아람 문자, 곧 지금도 히브리어에 쓰이는 “네모꼴” 글자를 썼습니다. 탈무드는 이 변화를 기억하며 에스라와 연결합니다(바빌로니아 탈무드, 산헤드린 21b–22a). 사해 사본은 그 전환이 진행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대부분은 네모꼴 문자로 쓰였고, 몇몇은 전부 고대 히브리 문자로 쓰였으며, 어떤 것은 네모꼴 문자로 쓰면서도 공경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이름 YHWH만은 옛 글자로 적습니다.
이 시기 내내 히브리어는 자음만으로 쓰였습니다. 모음은 독자들이 알고 있었고, 읽기 전통 속에서 전해졌습니다. 오늘날 히브리어 성경에 인쇄되는 모음 부호는 훨씬 뒤에 마소라 학자들이 덧붙인 것으로, 그들의 작업은 이 연재의 다른 글에서 다룹니다.
이것이 번역에 왜 중요한가
Open Word Bible은 기원후 1008년에 완성된 사본을 정성껏 옮겨 적은 웨스트민스터 레닌그라드 사본의 히브리어에서 구약성경을 번역합니다. 그 사본은 아주 긴 길의 끝에 서 있습니다. 입으로 한 말에서, 전문 필사자들이 쓴 두루마리로, 모음집으로, 사본의 사본으로, 그리고 마소라 전통으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이 연재의 나머지 글들은 그 길을 따라가며, 각 단계에서 우리에게 이른 것이 기록된 그대로임을 어떻게 알 수 있는지 묻습니다.
참고 문헌
- Barkay, Gabriel, Andrew G. Vaughn, Marilyn J. Lundberg, and Bruce Zuckerman. “The Amulets from Ketef Hinnom: A New Edition and Evaluation.” Bulletin of the American Schools of Oriental Research 334 (2004): 41–71.
- Ahituv, Shmuel. Echoes from the Past: Hebrew and Cognate Inscriptions from the Biblical Period. Translated by Anson F. Rainey. Jerusalem: Carta, 2008.
- Carr, David M. Writing on the Tablet of the Heart: Origins of Scripture and Literature.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5.
- Hoftijzer, Jacob, and Gerrit van der Kooij. Aramaic Texts from Deir ‘Alla. Documenta et Monumenta Orientis Antiqui 19. Leiden: Brill, 1976.
- Rollston, Christopher A. Writing and Literacy in the World of Ancient Israel: Epigraphic Evidence from the Iron Age. Atlanta: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2010.
- Schniedewind, William M. How the Bible Became a Book: The Textualization of Ancient Israel.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4.
- Tappy, Ron E., P. Kyle McCarter, et al. “An Abecedary of the Mid-Tenth Century B.C.E. from the Judaean Shephelah.” Bulletin of the American Schools of Oriental Research 344 (2006): 5–46.
- van der Toorn, Karel. Scribal Culture and the Making of the Hebrew Bible.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2007.
- Babylonian Talmud, Sanhedrin 21b–22a.
- 성경 인용은 이 글이 직접 옮긴 것이며, 인용 상자 안의 본문은 Open Word Bible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