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2:16은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이 펼치는 논증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이 절에는 한 세대 동안 신중한 독자들의 의견을 갈라놓은 표현이 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믿음을 말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리스도 자신의 신실하심을 말하는 것일까요? 이 글은 이 절과 그 문법, 논쟁의 역사, 그리고 Open Word Bible이 각 수준에서 무엇을 택했는지를 차례로 살펴봅니다.
안디옥
이 절은 한 이야기의 끝에 나옵니다. 안디옥에서는 유대인 신자들과 이방인 신자들이 함께 먹었고, 바울이 게바라고 부르는 베드로도 그들과 함께 먹었습니다. 그때 예루살렘에서 방문객들이 왔습니다.
야고보에게서 몇몇 사람이 오기 전에는 그가 이방 사람들과 함께 먹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오자, 그는 할례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해서 물러나 이방 사람들과 따로 떨어져 지내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유대인 신자들도 베드로를 따랐고, 바나바까지 그랬습니다(2:13). 바울은 모든 사람 앞에서 베드로에게 맞섰습니다. 당신 자신은 이방인처럼 살면서, 어떻게 이방인들에게 유대인처럼 살라고 강요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2:14). 식탁에서 물러남으로써 베드로는 마치 이방인 신자들이 공동체에 속하려면 유대인의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에게 한 바울의 말이 어디서 끝나는지는 표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어에는 따옴표가 없습니다. 2:14의 기록은 직접 질문이 끝나는 그곳에서 인용을 닫고, 15–21절이 바울이 한 말의 계속일 수도 있다는 주를 붙입니다. 어느 쪽이든 15–16절은 두 사도가 이미 알고 있던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나면서부터 유대인이고, 이방 죄인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사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었습니다.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으려는 것입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아무도 의롭다고 인정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문장의 대부분은 뜻에 관해 아무런 의문도 일으키지 않습니다. 의문을 일으키는 표현은 하나입니다.
문법을 한 걸음씩
그 표현은 διὰ πίστεως Ἰησοῦ Χριστοῦ입니다. 한 낱말씩 보겠습니다.
- 첫 낱말은 “통하여”라는 뜻입니다.
- 둘째 낱말은 πίστις(pistis)의 한 형태로, 믿음, 신뢰, 또는 신실함을 뜻할 수 있습니다.
- 그다음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인데, 속격으로 되어 있습니다. 속격은 한국어로 대개 “-의”로 옮기는 격입니다.
그러므로 낱말 그대로 옮기면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하여”가 됩니다. 킹 제임스 역본은 정확히 그대로 두었습니다. “by the faith of Jesus Christ”(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입니다. 그러나 “-의”는 질문을 감춥니다.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말에도 같은 문제가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뜻할 수도 있고,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뜻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어가 믿음을 뜻하는 낱말 뒤에 어떤 사람의 이름을 둘 때, 그것은 다음을 뜻할 수 있습니다.
- 그 사람을 향한 믿음,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또는
- 그 사람이 지닌 믿음,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하심, 그분의 죽음에서 드러난, 하나님께 대한 그분 자신의 신실한 순종.
문법학자들은 앞의 것을 목적격 속격, 뒤의 것을 주격 속격이라고 부릅니다. 그리스어는 둘 다 허용합니다. 바울은 이 절에서 이 표현을 두 번 쓰는데, 두 번째는 ἐκ πίστεως Χριστοῦ, 곧 “그리스도의 믿음으로”입니다.
이 절의 짜임새
두 읽기를 저울질하기 전에, 이 절이 어떻게 짜여 있는지 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바울은 같은 대조를 세 번 합니다.
- 사람은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고 인정받지 않고,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해서 인정받는다.
- 우리는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고 율법의 행위로 인정받지 않으려고, 그리스도 예수를 믿었다.
- 율법의 행위로는 어떤 육체도 의롭다고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매번 율법의 행위가 한쪽에 섭니다. 믿음은 다른 쪽에 서거나, 셋째 줄에서처럼 그저 암시됩니다. 가운데에는 신자들에 관한 분명한 진술 하나가 서 있습니다. ἡμεῖς εἰς Χριστὸν Ἰησοῦν ἐπιστεύσαμεν, 곧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믿었다”입니다. 이 동사는 단순 과거입니다. 이것은 둘 다 나면서부터 유대인인 바울과 베드로가 그리스도를 신뢰하게 된 그 순간을 돌아봅니다. 율법을 손에 쥐고 있던 그들조차 이 길로 와야 했습니다.
이 짜임새는 뒤따르는 질문에서 중요합니다. 양쪽이 이것을 다르게 읽기 때문입니다.
각 읽기를 지지하는 논거
양쪽 모두 좋은 논거를 가지고 있으며, 이 절의 기록은 그것들을 펼쳐 보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지지하여: 이 절의 가운데 부분이 다른 식으로는 읽을 수 없는 말로 바로 그것을 말합니다. 다음 장에서 바울은 신자들이 아브라함처럼 믿음을 가지는 것에 관해 말합니다(3:6–9). 이 읽기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되풀이가 바울이 요점을 강조하는 방식이라고 덧붙입니다. 그리스도에 율법을 더하고 싶은 유혹을 받는 사람들에게 쓰면서, 그는 일부러 세 번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을 지지하여: 첫째 방식으로 읽으면 이 절은 같은 말을 세 번 하는 셈이 됩니다. 그리고 바울은 다른 곳에서 같은 구문을 어떤 사람 자신의 믿음에 대해 씁니다. “아브라함의 믿음”(로마서 4:16), “하나님의 신실하심”(로마서 3:3)이 그 예입니다. 이 읽기에서는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이 의롭다고 인정받는 근거이며,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믿었다”는 그것에 대한 신자의 응답입니다.
이 표현은 어떻게 읽혀 왔는가
교회 역사의 대부분 동안 독자들은 이 표현을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로이 해리스빌 3세(Roy Harrisville III)는 1994년의 한 논문에서 그리스 교부들을 살펴보았고, 모호한 대목들은 있지만 분명하게 그리스도 자신의 신실하심을 뜻하는 대목은 하나도 찾지 못했습니다. 이언 월리스(Ian Wallis)는 1995년의 연구에서 초기의 증거를 다르게 읽었습니다. 마르틴 루터의 독일어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라고 하며,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는다는 종교개혁의 가르침은 이 절에 기대었습니다.
현대의 논쟁은 리처드 헤이스(Richard Hays)의 책 The Faith of Jesus Christ(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1983년)와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 책은 주격 속격 읽기를 주장했습니다. 제임스 던(James Dunn)은 1991년 성서문학회(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에서 그에게 답했고, 두 사람의 논문은 양쪽 모두에게 기준점이 되었습니다. 헤이스의 책이 2002년에 다시 나왔을 때 두 논문이 함께 실려, 독자들이 그 논쟁을 직접 저울질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랜드 헐트그렌(Arland Hultgren)도 제기한 던의 논거 하나는 문법적인 것입니다. 바울이 분명하게 어떤 사람 자신의 믿음을 뜻할 때에는 대개 “믿음” 앞에 정관사를 두는데, 여기서는 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이클 버드(Michael Bird)와 프레스턴 스프링클(Preston Sprinkle)이 편집한 2009년의 한 책은 양쪽의 학자들을 한데 모았습니다.
번역들도 논쟁과 함께 움직였습니다. 1989년의 New Revised Standard Version은 본문에 “faith in”(믿는 믿음)을, 각주에 “the faith of”(-의 믿음)를 두었습니다. 2021년의 개정판은 “the faith of”를 본문으로 옮겼습니다. 대부분의 영어 번역은 여전히 “faith in”으로 읽습니다.
각 읽기가 독자에게 뜻하는 것
“믿는 믿음”으로 읽으면, 이 절은 사람이 하나님의 판결을 받는 길을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강조점은 신자의 응답에 놓입니다.
“신실하심”으로 읽으면, 이 절은 그 판결의 근거를 말합니다.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끝까지 이어진 그리스도 자신의 순종입니다. 그분을 믿는 것은 그에 대한 응답으로 뒤따릅니다.
기록은 놓치기 쉬운 점을 하나 더 짚습니다. 두 읽기는 이 절에서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해서는 일치합니다. 사람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놓인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표현에서 바울이 무게를 어디에 두느냐입니다. 어느 읽기도 믿음이나 그리스도를 덜 중요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번역이 하는 일
Open Word Bible은 모든 수준에서 첫째 읽기를 따르고, 그 결정을 *불확실*로 표시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을 통하여”를 각주에 둡니다. 직역 수준도 “믿는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리스어에는 전치사가 없으므로, 가장 직역에 가까운 번역조차 한 가지 읽기를 골라야 합니다. 영어는 요한복음 1:16의 “grace for grace”(은혜 대신 은혜)처럼 여기서 질문을 열어 둘 수 없습니다. “faith of”는 대부분의 독자에게 실수처럼 들리거나, 슬그머니 그리스도 자신의 믿음 쪽으로 기울 것입니다.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출신] 죄인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이 율법의 행위들로는 의롭다고 인정받지 못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인정받는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들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으려는 것입니다. 율법의 행위들로는 어떤 육체도 의롭다고 인정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읽기 화면에서 이 결정에는 불확실 표시가 붙어 있습니다. 16절을 누르면 기록이 두 읽기와 각각의 이유, 그리고 우리가 택하지 않은 표현을 담은 각주를 보여 줍니다.
같은 질문이 다른 곳에서도 다시 나오며, 기록들은 같은 방식으로 답합니다. 갈라디아서 2:20에서 바울은 ἐν πίστει ζῶ τῇ τοῦ υἱοῦ τοῦ θεοῦ, 곧 “하나님의 아들의 … 믿음으로” 삽니다. 기록은 “믿는 믿음”을 따르면서, 그 뒤의 말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해 자기 자신을 내주신”이 아들 자신의 신실한 행위를 묘사할 수도 있다고 적어 둡니다. 갈라디아서 3:22, 로마서 3:22, 빌립보서 3:9도 불확실로 표시되어 있고, 각각 각주가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22의 주는 다른 쪽을 위한 논거를 하나 덧붙입니다. 23절과 25절은 믿음이 역사 속의 한 사건처럼 “온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에 잘 어울린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3:26도 불확실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에베소서 3:12는 그렇지 않습니다. 에베소서에서 믿음은 분명히 그리스도를 향한 신자들의 신뢰이기 때문입니다(1:15).
다른 결정들
이 문장의 나머지 부분에는 모든 언어가 공유하는 결정이 몇 가지 있습니다.
- 이방 죄인들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율법 없이 사는 이방인들을 가리켜 하던 말입니다. 바울은 이 표현을 뒤집기 위해 가져옵니다. 유대인들조차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쉬운 말 수준은 이것이 바울의 판단이 아니라 하나의 꼬리표임을 분명히 합니다.
- 의롭다고 인정받다는 법정의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옳다고 선언하시고, 무죄로 하시며, 받아들이신다는 것입니다. 영어판의 직역과 균형 수준은 이 절을 로마서와 이어 주는 낱말인 “justify”(의롭다 하다)를 지키고, 쉬운 말 수준은 “put right with God”(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놓이다)이라고 합니다. 한국어판은 모든 수준에서 “의롭다고 인정받다”를 쓰고, 쉬운 말 수준은 “하나님께”를 덧붙입니다.
- 율법의 행위는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근거로서 모세의 율법이 요구하는 것을 행하는 것을 뜻합니다. 안디옥과 갈라디아에서 문제가 된 것은 음식법과 할례였지만, 바울의 논증은 율법 전체로 나아갑니다(3:10–12; 5:3).
- 다만 믿음을 통해서는 행위와 믿음이 함께 의롭다고 인정받게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이 절의 나머지는 둘을 세 번이나 맞세우므로, 균형 수준은 긍정하는 쪽을 따로 한 문장으로 말합니다. “사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습니다.”
- 어떤 육체도는 시편 143:2의 메아리로, “어떤 사람도”를 뜻하는 히브리어식 표현입니다. “육체”라고 하면 몸을 떠올리게 되므로, 균형과 쉬운 말 수준은 그 뜻을 “아무도”라고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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