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단어는 담고 있는 것이 너무 많아서, 어떻게 번역하든 무언가가 새어 나갑니다. 흔히 ḥesed 또는 chesed(헤세드)로 적는 히브리어 단어 חֶסֶד가 그런 단어입니다. 이 말은 구약에 약 250번 나오고, 그 가운데 절반쯤이 시편에 있습니다. 이 단어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묘사한 방식의 중심에 있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의 중심에도 있습니다. 영어 성경들은 “mercy”(자비), “kindness”(친절), “lovingkindness”(인자), “steadfast love”(변함없는 사랑), “loyalty”(충성), “faithful love”(신실한 사랑) 등 여러 말을 시도해 왔습니다. 저마다 참된 무언가를 말하지만, 저마다 무언가를 빠뜨립니다. 한국 개신교 성경들도 전통적으로 “인자”나 “인애” 같은 말로 옮겨 왔는데, 사정은 비슷합니다.
이 단어에 담긴 것
정의보다 이야기에서 시작해 봅시다. 룻기에서 젊은 과부 두 사람이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길을 떠납니다. 나오미는 길에서 멈추어 서서 두 사람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But Naomi said to her two daughters-in-law, “Go home, both of you, each to the house of your mother. May the LORD show you faithful love, just as you showed it to the men who died and to me.
(룻기는 아직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아 영어판 본문이 보입니다. 이 글에 인용한 구약 본문은 모두 그렇습니다.) 이 절의 의미 결정은 *ḥesed*를, 서로 매인 사람에게 의리에서 우러나 의무가 요구하는 것 이상으로 베푸는 선함이라고 설명합니다. 두 젊은 여인은 나오미에게 더는 갚을 것이 없었습니다. 남편들은 죽었고, 관습대로라면 친정으로 돌아가 다시 결혼해도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신의를 지켰습니다. 나오미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도 똑같이 신의를 지켜 주시기를 구합니다.
나중에 룻은 밤에 보아스를 찾아가, 집안의 기업 무를 자로서 자기와 결혼해 달라고 청합니다. 보아스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He said, “May the LORD bless you, my daughter! This faithful love you have shown now is greater than what you showed before, since you have not looked to the young men for a husband, whether poor or rich.
기록은 두 가지 행동을 설명합니다. 첫째 것은 아마도 룻이 자기 땅을 떠나 나오미를 돌본 일일 것입니다. 둘째 것은 바로 이 청입니다. 룻은 자기 남편감을 스스로 고르는 대신, 죽은 남편의 이름과 나오미의 집안을 이어 갈 결혼을 택했습니다. 이것이 *ḥesed*입니다. 관계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아보고, 누구도 요구할 수 없는 데까지 더 나아가는 사랑입니다.
이 단어에는 세 가지가 함께 들어 있고, 영어는 한 구절에 셋을 다 담는 일이 드뭅니다.
- 의리: 가족, 우정, 약속, 언약 같은 매임 안에서 보이는 것입니다.
- 친절: 마지못해 하는 것이 아니라 따뜻하고 너그럽습니다.
- 행동: 느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ḥesed*를 “행하고” “베풉니다”.
하나님 자신의 이름
이 단어가 가장 중요하게 쓰이는 곳은 시내 산입니다. 이스라엘은 막 금송아지를 만들었고,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나가시며 자신의 이름을 선포하십니다.
The LORD passed in front of Moses and called out, “The LORD, the LORD, a God of tender compassion and grace, slow to grow angry, rich in faithful love and in truth,
이 단어는 חֶ֥סֶד이고, 다음 절은 하나님께서 이것을 “천 대까지” 지키시면서도 죄 있는 사람을 결코 벌하지 않고 두지는 않으신다고 덧붙입니다. 의미 결정은 이것을 관계에 신의를 지키며 포기하지 않는 친절과 사랑이라고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 계명에서 약속하신 사랑이며(20:6), 자기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실 때 보여 주신 사랑입니다(15:13).
이 구절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이스라엘의 고백이 됩니다. 기록은 이 구절들이 메아리치는 곳들을 적어 둡니다. 민수기 14:18, 시편 86:15, 103:8, 145:8, 느헤미야 9:17, 요엘 2:13, 요나 4:2입니다. 요나는 이 말씀을 불평으로 인용합니다. 그가 도망친 것은 하나님이 이런 분이시라는 것, 그래서 니느웨를 살려 주실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시편 136편은 이 단어를 후렴으로 만듭니다. 스물여섯 절이 모두 똑같은 세 단어, כִּ֖י לְעוֹלָ֣ם חַסְדּֽוֹ, 곧 “그분의 신실한 사랑은 영원하기 때문이다”로 끝납니다.
주께 감사하여라. 그분은 선하시다. 그분의 한결같은 사랑이 영원하다.
이 시편은 창조와 출애굽과 땅을 주심을 차례로 노래하고, 한 행이 끝날 때마다 백성이 후렴으로 응답합니다. 기록은 언약궤가 예루살렘에 들어올 때와 성전을 봉헌할 때에도 같은 감사의 부름이 노래되었다고 적어 둡니다.
영어 단어들이 저마다 모자란 이유
“Mercy”(자비). 가장 오래된 영어 번역어로,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거쳐 왔습니다. 구약의 그리스어 번역인 70인역은 ḥesed*를 대개 *eleos, 곧 “자비, 불쌍히 여김”으로 옮겼습니다. 히에로니무스의 라틴어 번역은 *misericordia*를 썼습니다. 흠정역(King James Version)은 자주 “mercy”라고 하며, 이 역본의 시편 136편은 “for his mercy endureth for ever”(그의 자비는 영원하도다)를 되풀이합니다. 그러나 자비는 아무런 권리도 없는 사람, 흔히 잘못한 사람에게 베푸는 불쌍히 여김입니다. 룻은 나오미에게 자비를 베푼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비는 *ḥesed*의 너그러움은 잡아내지만 의리는 놓칩니다.
예레미야애가 3:22가 그 차이를 보여 줍니다. 이 절은 *ḥesed*와 자비를 뜻하는 히브리어 단어를 나란히 놓습니다.
It is by the LORD’s loyal love that we have not been wiped out, for his mercies have not failed.
첫 행에는 *ḥesed*의 복수형 חַֽסְדֵ֤י이 있습니다. 주님의 수많은 신실한 사랑의 행동입니다. 둘째 행에는 *raḥămîm*이 있는데, 태(胎)를 뜻하는 말과 관련된 단어로, 자식을 향한 부모의 애틋한 마음을 가리킵니다. 영어판 기록은 두 단어를 구별해서, 모든 수준에서 첫째는 “loyal love”(신실한 사랑), 둘째는 “mercies”(긍휼)로 옮깁니다. 둘 다 “mercy”라고 하면 이 절은 같은 말을 두 번 하는 셈이 될 것입니다.
“Lovingkindness”(인자). 이 단어는 성경 번역을 위해 만들어진 말입니다. 흔히 마일스 커버데일이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의 1535년 영어 성경이 시편에서 이 말을 썼고, 흠정역도 여러 곳에서 이 말을 그대로 두었습니다. 좋은 시도입니다. 사랑(loving)과 친절(kindness)을 한 단어로 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평범한 영어가 아니며, 의리, 곧 이 친절이 매임 안에서 마땅히 베풀어지고 오랫동안 지켜진다는 뜻을 놓칩니다.
“Kindness”(친절). 이것만으로는 너무 약합니다. 낯선 사람도 한 번은 친절할 수 있습니다. *Ḥesed*는 곁에 머무는 사람의 친절입니다.
“Loyalty”(충성, 의리). 매임은 잡아내지만 따뜻함을 놓칩니다. 병사는 싫어하는 지휘관에게도 충성할 수 있습니다. *Ḥesed*는 사랑이 담긴 의리입니다.
“Steadfast love”(변함없는 사랑). 1952년 개정표준역(Revised Standard Version)이 이 표현을 널리 알렸고, 그 뒤로 여러 번역이 따랐습니다. 아마 흔히 쓰는 영어 표현 가운데 가장 가까운 말일 것입니다. 사랑과 한결같음을 함께 담기 때문입니다. 약점은 “steadfast”가 대부분의 사람이 거의 쓰지 않는 단어라는 것, 그리고 관계 안의 의리보다는 오래가는 감정처럼 들린다는 것입니다.
학자들은 이 단어의 어느 쪽이 가장 중요한지를 두고 논쟁해 왔습니다. 넬슨 글루엑은 1927년 독일어로 처음 출판한 연구에서, 관계 안의 상호 의무를 강조했습니다. ḥesed*는 매임이 요구하는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캐서린 둡 사켄펠드는 *The Meaning of Hesed in the Hebrew Bible(1978)에서 자유를 강조했습니다. *ḥesed*는 도울 능력이 있는 사람이, 관계 안에서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거절할 수도 있었는데 베푸는 도움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독자는 두 가지를 함께 붙듭니다. 이 단어는 의리를 지키는 말이면서, 자유로운 말입니다.
Open Word Bible은 어떻게 하는가
영어판 기록은 몇 가지 정해진 번역어를 쓰는데, 저마다 이 단어의 의리를 담도록 고른 것입니다. 룻기 1:8의 한 표현 결정은 이것을 분명히 말합니다. “kindness”(친절)만으로는 의리가 빠진다는 것입니다.
율법서와 역사서와 룻기에서, 직역 수준은 “steadfast love”(변함없는 사랑)라고 하고 균형과 쉬운 말 수준은 “faithful love”(신실한 사랑)라고 합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34:6에서 하나님은 직역에서 “great in steadfast love”(변함없는 사랑이 크시고), 균형에서 “rich in faithful love”(신실한 사랑이 풍성하신) 분입니다. 라합이 정탐꾼들에게 자기가 그들에게 베푼 *ḥesed*를 자기 가족에게 베풀어 달라고 청하는 여호수아 2:12, 그리고 다윗이 요나단을 생각해서 *ḥesed*를 베풀 사울 집안의 사람을 찾는 사무엘하 9:1도 같은 방식을 따릅니다.
시편과 예언서에서는 직역과 균형 수준이 “loyal love”(신실한 사랑)라고 하고, 쉬운 말 수준이 “faithful love”라고 합니다. 위의 시편 136편과 예레미야애가 3:22에서 볼 수 있는 표현이 이것입니다.
이 차이는 표현에만 있습니다. 의미 결정은 이 모든 곳에서 같은 뜻, 곧 매임 안에서 신의를 지키는 사랑을 설명합니다. 두 표현은 서로 다른 책 묶음의 용어표에서 정해졌고, 프로젝트의 메모는 둘이 어색하게 만나는 곳 하나를 짚어 둡니다. 요엘서와 요나서가 출애굽기 34:6을 인용할 때, 두 책의 표현이 아직 서로 맞지 않습니다. 이것은 검토를 위해 열려 있는 질문이며, 이 인용들에 쓸 표현 하나를 골라야 합니다. 이 단어를 한국어로 어떻게 옮길지는 구약의 한국어 번역이 시작될 때 정해질 것입니다.
몇몇 절은 이 방식에서 벗어나며, 저마다 기록된 이유가 있습니다.
- 창세기 24:27. 아브라함의 종은 하나님께서 자기 주인에게서 “그분의 신의와 진실”을 거두지 않으셨다고 찬양합니다. 영어판 균형 수준은 이 짝을 “He has not stopped being kind and true to my master”(내 주인에게 친절하고 진실하시기를 그치지 않으셨다)로 풀고, 쉬운 말 수준은 하나님께서 “has kept his loving promises”(사랑의 약속을 지키셨다)라고 합니다.
- 에스더 2:9. 에스더는 여인들을 맡은 관리 앞에서 “호의를 얻었습니다”. 한 의미 결정은 여기서처럼 윗사람이 베풀 때 이 단어가 호의를 뜻한다고 설명하고, 한 표현 결정은 평소의 “faithful love”가 오해를 낳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균형 수준은 “won his favor”(그의 호의를 얻었다)라고 합니다.
- 미가 6:8.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예언자가 요약한 말은 “정의를 행하고, *ḥesed*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입니다. 히브리어는 “사랑하다”라는 동사를 이 명사 앞에 두는데, 영어로 “to love loyal love”(신실한 사랑을 사랑하다)는 어색합니다. 창립자의 결정에 따라 직역은 이 표현을 유지하고, 균형은 “to love loyalty”(신의를 사랑하다), 쉬운 말은 “to love being kind and loyal”(친절하고 신의 있게 사는 것을 사랑하다)이라고 합니다. 표현 결정은 이 차이가 표현에만 있다고 밝힙니다.
- 이사야 40:6.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ḥesed*는 들의 꽃과 같다.” 사람에 대해 쓰일 때 이 단어는 오래가지 못하는 그들의 신실함을 뜻합니다. 영어판 기록은 직역과 균형에서 “loyalty”, 쉬운 말에서 “faithfulness”라고 하며, 한 각주는 70인역이 이곳을 “영광”으로 읽고 베드로전서 1:24가 그 형태를 인용한다고 적어 둡니다.
그리스어가 “자비”라고 할 때
한 예가 이 프로젝트가 왜 각 본문을 그 본문의 언어에서 번역하는지 보여 줍니다. 호세아 6:6은 이렇게 말합니다.
For I want loyal love, not sacrifice, and knowledge of God more than burnt offerings.
많은 영어 성경이 여기서 “I desire mercy, and not sacrifice”(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라고 합니다. 이 행이 그리스어로 그렇게 읽히고, 예수님이 마태복음에서 이 말씀을 두 번 인용하시기 때문입니다(9:13; 12:7). 한 각주가 이 선택을 설명합니다. 마태는 이 말씀을 그리스어로 전하고, 거기서 이 단어는 “자비”이며, 마태복음은 마태복음으로 번역합니다. 호세아서는 히브리어에서 번역하며, 호세아의 단어는 더 넓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그리고 다른 사람을 향한 신실한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세리들과 굶주린 제자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일에 적용하실 때, 그분은 이 단어가 뜻하는 것의 한 부분을 가져다 쓰시는 것입니다.
천천히 읽어야 할 단어
어떤 영어 단어 하나로도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그 밑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 두면 도움이 됩니다. Open Word Bible에서 “steadfast love”, “faithful love”, “loyal love”를 읽을 때, 그 뒤에 있는 단어는 같습니다. 그것은 스스로를 당신에게 매어 두고 결코 놓지 않는 이의 사랑을 뜻합니다. 룻은 나오미에게 그 사랑을 보였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에게 그 사랑을 구했고, 다윗은 그 사랑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산 위에서 자신이 누구신지 말씀하시려고 고르신 단어입니다.
기록은 읽기 화면에 있습니다. 룻기 1장 열기, 출애굽기 34장 열기, 시편 136편 열기, 호세아 6장 열기. 출애굽기 34:6에서 번역이 하나님의 이름을 어떻게 다루는지에 관한 질문은 번역 속의 하나님의 이름을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