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인자”(사람의 아들)만큼 귀에 익으면서도 오해받기 쉬운 표현은 드뭅니다. 많은 독자는 이 말이 “하나님의 아들”과 짝을 이룬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인성을, 다른 하나는 신성을 가리키는 칭호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표현은 그보다 오래되었고, 또 더 낯섭니다. 히브리어와 아람어에서 이것은 “사람”을 가리키는 평범한 말이었습니다. 다니엘서의 한 환상에서는 사람처럼 보이고 하늘 구름과 함께 오는 인물을 묘사합니다. 그리고 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이 자신을 부르실 때 다른 어떤 말보다 자주 쓰시는 이름이 됩니다.

Open Word Bible은 이 표현을 곳에 따라 다르게 다룹니다. 곳에 따라 하는 일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구약에서 복음서까지 이 표현을 따라가면서, 각각의 선택 뒤에 있는 결정을 보여 줍니다.

평범한 표현

히브리어는 영어나 한국어라면 “~ 가운데 하나”나 “~에 속한 사람”이라고 말할 자리에 “~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일이 많습니다. “힘의 아들”은 힘센 사람이고, “예언자들의 아들들”은 무리를 이룬 예언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 곧 בֶּן־אָדָם֙(ben ʾādām)은 단순히 인류의 한 사람을 뜻합니다. 두 번째 단어는 아담을 가리킬 때, 그리고 인류 전체를 가리킬 때 쓰는 바로 그 말입니다.

시편 8편에서 이 표현이 어떻게 쓰이는지 볼 수 있습니다. 시인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나님께서 사람을 조금이라도 마음에 두신다는 사실에 놀랍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그를 기억하시며, 인생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그를 찾아오십니까?

시편 8:5 · Open Word Bible, 직역 번역 근거와 함께 읽기 →

이것은 읽기 설정을 그대로 둔 직역 수준입니다. (시편은 아직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아 영어판 본문이 보입니다.) 이 절의 두 행은 히브리 시가 흔히 그러하듯 같은 말을 두 번 합니다. “사람”(man)과 “사람의 아들”(son of man)은 둘 다 사람을 가리키는 평행어로, 광대한 하늘 아래 작고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를 말합니다. 이 절의 의미 결정이 바로 그렇게 설명합니다. (대부분의 성경은 이 절을 8:4로 매기지만, Open Word Bible은 표제를 1절로 세는 히브리어 성경의 절 번호를 따릅니다.)

이 표현은 남자든 여자든 모든 사람을 뜻하므로, 이 시편에서는 성별 표현 설정의 적용을 받습니다. 영어판 직역은 기본값으로 “a mortal”(죽을 인생)이라고 하고, 전통적인 표현을 원하는 독자는 설정을 바꾸어 “the son of man”(인자)을 볼 수 있습니다. 설정은 표현을 바꿀 뿐 의미는 바꾸지 않습니다. 두 표현 모두 “사람”을 뜻합니다. 전통적인 표현을 대안으로 남겨 둔 데에는 기록이 밝히는 이유가 있습니다. 히브리서 2:6–8은 이 시편을 인용하면서, 이미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유일한 사람인 예수님에 관한 말씀으로 읽습니다. 두 본문을 비교하는 독자는 양쪽에서 같은 말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민수기 23:19도 이 표현을 같은 뜻으로 씁니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실 사람이 아니시고, 마음을 바꾸실 “사람의 아들”도 아니십니다. 여기서 대조되는 것은 하나님의 믿음직하심과 사람의 변덕스러움이며, 영어판 균형 수준은 그냥 “a mortal”(죽을 인생)이라고 합니다.

에스겔: “사람의 아들아, 일어서라”

이 표현은 구약의 다른 어느 책보다 에스겔서에 자주 나옵니다. 첫 장에서 예언자는 하나님의 영광, 곧 불과 바퀴와 보좌의 환상을 보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립니다. 그때 한 음성이 말합니다.

He said to me, “Son of man, stand up on your feet, and I will speak with you.”

에스겔 2:1 · Open Word Bible, 균형 번역 근거와 함께 읽기 →

하나님은 한 번도 에스겔을 이름으로 부르지 않으십니다. 이 책 전체에서 약 아흔세 번이나 그를 “사람의 아들”이라고 부르십니다. 의미 결정은 이 표현이 여기서 무슨 일을 하는지 설명합니다. 1장의 타오르는 영광 곁에 놓인 이 말은, 에스겔이 하나님 앞에 선 죽을 피조물임을 일깨웁니다. 동시에 이 말은 하나님에 대해서도 무언가를 말해 줍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에게 말씀하시고 그를 보내기로 선택하신 분입니다.

현대의 많은 성경은 이 표현을 뜻으로 풀어 옮깁니다. 예를 들어 영어 새개정표준역(NRSV)은 “O mortal”(죽을 인생아)이라고 합니다. Open Word Bible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한 표현 결정은 쉬운 말 수준까지 포함해 모든 수준에서 “son of man”(사람의 아들)을 유지하라는 창립자의 결정을 기록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언자를 부르실 때마다 독자가 같은 말을 만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영어판에서 이 표현은 칭호가 아니므로 소문자로 쓰고, 여기서는 특정한 한 남자를 가리키므로 성별 표현 설정도 적용하지 않습니다.

같은 각주는 한 가지를 더 지적합니다. 에스겔을 부르는 이 말은 예수님이 쓰시는 칭호 “인자”(the Son of Man)가 아닙니다. 그 칭호는 다른 곳, 곧 다니엘서의 한 환상에서 왔습니다.

다니엘 7장: “사람의 아들 같은 이”

다니엘 7장은 다니엘 2–7장의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아람어로 기록되었고, 이 표현의 아람어 형태는 כְּבַ֥ר אֱנָ֖שׁ(kĕbar ʾĕnāsh), 곧 “사람의 아들 같은 이”입니다. 이 말은 한 꿈의 절정에 나옵니다.

다니엘은 네 짐승이 바다에서 올라오는 것을 봅니다. 독수리 날개를 가진 사자, 곰, 머리가 넷인 표범, 그리고 쇠 이빨과 큰소리치는 뿔을 가진, 나머지보다 더 무서운 넷째 짐승입니다. 그러고 나서 보좌들이 놓이고, 옛적부터 계신 이가 자리에 앉으십니다. 그분의 옷은 눈처럼 희고, 그분의 보좌는 불꽃입니다. 짐승들이 심판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As I watched in the visions of the night, I saw one like a son of man coming with the clouds of heaven. He came to the Ancient of Days and was presented before him.

다니엘 7:13 · Open Word Bible, 균형 번역 근거와 함께 읽기 →

이 기록의 첫째 의미 결정은 이 말을 꼼꼼히 읽습니다. “같은”은 닮음을 나타냅니다. 첫째 짐승이 “사자 같고” 둘째가 “곰 같았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4–5절). 바다에서 나온 네 짐승 다음에, 사람처럼 보이는 이가 구름과 함께 옵니다. 이 말은 다니엘이 본 것을 묘사할 뿐, 아직 칭호가 아닙니다.

두 결정이 여기에 내용을 더합니다. 구약의 다른 곳에서 구름은 하나님 자신이 오시는 장면과 함께 나옵니다(시편 104:3; 이사야 19:1). 그리고 이 환상에서 이 인물은 구름과 함께 보좌를 향해, 곧 하나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는 옛적부터 계신 이 앞으로 인도되며, 본문은 두 분을 분명히 구별합니다. 그다음 그는 짐승들이 잠시만 가졌던 것을 받습니다.

He was given authority, glory and kingly power, so that all peoples, nations and languages would serve him. His authority is an everlasting authority that will never pass away, and his kingdom will never be destroyed.

다니엘 7:14 · Open Word Bible, 균형 번역 근거와 함께 읽기 →

“섬기다”로 옮긴 동사는 다니엘서가 신을 섬기고 예배하는 데 쓰는 말입니다(3:12, 14, 28). 불확실로 표시된 한 의미 결정은, 이 말이 온전한 의미의 예배를 뜻한다고 볼 필요는 없지만 하나님께 드려야 할 존귀를 가리킨다고 말합니다.

그 인물은 누구인가?

다니엘이 설명을 구하자 한 천사가 풀이해 줍니다. 네 짐승은 네 왕, 곧 네 나라입니다. 이어서 천사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거룩한 이들”이 나라를 받아 영원히 차지할 것이라고 말하고(18절), 마지막에는 그 나라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거룩한 이들의 백성”에게 주어질 것이라고 말합니다(27절). 환상에서 사람의 아들 같은 이에게 주어진 것이, 풀이에서는 하나님의 거룩한 이들에게 주어집니다.

그렇다면 그는 누구입니까? 독자들은 여러 가지로 답해 왔고, 13절의 기록은 *불확실*로 표시된 각주에서 그 답들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 각 짐승이 한 나라를 나타내듯, 그는 거룩한 이들 전체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 그는 그들의 하늘의 지도자나 대표자일 수 있습니다. 이 인물을 다니엘서 뒷부분에서 이스라엘의 수호자로 나오는 천사장 미가엘(10:21; 12:1)과 동일시하기도 합니다.
  • 그는 메시아인 왕일 수 있습니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해석자들은 모두 그를 메시아로 읽어 왔습니다. 신약은 이 환상을 거듭 가져다 씁니다. 예수님은 인자가 하늘 구름과 함께, 또는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마태복음 24:30; 26:64; 마가복음 13:26; 14:62). 요한계시록 1:7은 “그가 구름과 함께 오신다”고 선포하고, 몇 절 뒤에 요한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사람의 아들 같은 이”로 봅니다(1:13).

어떤 해석자들은 이 읽기들이 서로를 배제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합니다. 성경에서 왕은 자기 백성을 대표할 수 있고, 왕에게 일어나는 일은 백성에게도 일어납니다. 거룩한 이들을 대표하고, 그들을 대신해 나라를 받아 그들과 함께 나누는 인물이라면, 환상과 그 풀이에 모두 들어맞을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신약의 읽기는 다니엘서와 멀지 않습니다. 나라는 인자에게 주어지고, 그를 통해 그에게 속한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

기록은 이 읽기들 가운데 하나를 고르지 않습니다. 환상 자체의 묘사를 그대로 두고, 질문을 열어 둡니다.

이것은 표현에서도 드러납니다. 영어판의 모든 수준에서 이 인물은 소문자로 쓴 “one like a son of man”(사람의 아들 같은 이)이고, 그를 가리키는 대명사(“he”, “him”)에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대명사 설정을 적용하지 않습니다. 이 설정은 원하는 독자를 위해 대명사를 대문자로 씁니다. 같은 절에서 옛적부터 계신 이를 가리키는 대명사에는 이 설정이 적용됩니다. 한 표현 결정이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환상은 이 인물을 묘사할 뿐이며, 표현이 그가 누구인지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영어판 쉬운 말 수준은 아람어의 뜻을 그대로 풀어 “someone who looked like a human being”(사람처럼 보이는 이)이라고 합니다. (한국어는 대문자가 없으므로 이 설정 자체가 해당되지 않습니다.)

다니엘 7장으로 이 형상이 유대 문헌에서 끝난 것은 아닙니다. 에녹1서에서 비유서(Similitudes, Parables, 37–71장)라고 불리는 부분은 “그 인자”라고 불리는 하늘의 인물, 곧 영광의 보좌에 앉아 심판하는 택함받은 이를 말합니다. 그 연대는 논쟁 중입니다. 에녹1서 가운데 사해 사본에서 발견되지 않은 유일한 부분이며, 학자들은 그 연대를 기원전 1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 말까지 다양하게 잡습니다. 기원후 1세기 말쯤 기록된 또 다른 묵시 문헌인 에스라4서는 “사람의 모습 같은 것”이 바다에서 올라와 하늘 구름과 함께 나는 것을 봅니다(13장). 두 문헌 모두, 그 시대의 유대인들이 다니엘의 인물을 한 개인이자 하나님의 하늘의 대리자로 읽었음을 보여 줍니다.

복음서에서

복음서에서 이 표현은 약 여든 번 나오며, 거의 언제나 예수님의 입에서 나옵니다. 복음서의 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면전에서 “인자”라고 부르지 않고, 이 이름으로 그분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지도 않습니다. 요한복음 12:34에서 무리가 이 말을 쓸 때에도, 그들은 그분의 말씀을 되받아 묻는 것입니다. “이 인자는 누구입니까?” 복음서 밖에서는 이 표현이 드뭅니다. 스데반이 죽어 가면서 한 번 쓰고(사도행전 7:56), 요한계시록은 “사람의 아들 같은 이”를 봅니다(1:13; 14:14). 바울은 이 표현을 한 번도 쓰지 않습니다.

그리스어 형태는 ὁ υἱὸς τοῦ ἀνθρώπου으로, 단어 그대로 옮기면 “그 사람의 그 아들”입니다. 관사가 두 번 붙은 이 형태는 그리스어로서는 특이하며, 셈어 표현을 조심스럽게 옮긴 말처럼 읽힙니다. 학자들은 흔히 예수님의 인자 말씀을 세 묶음으로 나누어 왔는데, 마가복음에는 세 묶음이 모두 있습니다.

땅에 있는 인자. 마비된 사람이 지붕을 통해 달려 내려오자, 예수님은 그에게 죄가 용서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율법학자들이 하나님만 죄를 용서하실 수 있다고 반발하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너희에게 알게 해 주겠다.” 그러고 나서 예수께서 몸이 마비된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마가복음 2:10 · Open Word Bible, 균형 번역 근거와 함께 읽기 →

의미 결정은 이 칭호를 예수님이 자신을 가리키시는 방식으로 읽습니다.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나님께 권세를 받는 다니엘 7:13–14를 떠올리게 하는 말입니다. 이 결정은 “아무 사람이나”를 택하지 않은 대안으로 적어 둡니다. 같은 묶음에는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마가복음 2:28과,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는 마태복음 8:20이 들어갑니다.

고난받는 인자.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부르자, 곧바로 예수님은 새로운 방식으로 말씀하기 시작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인자가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버림받아 죽임을 당하고, 사흘 뒤에 다시 살아나야 한다고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마가복음 8:31 · Open Word Bible, 균형 번역 근거와 함께 읽기 →

다니엘 7장에는 그 인물이 고난받는다는 말이 전혀 없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내용입니다. 기록은 “버림받다”라는 동사가 시편 118:22, 곧 건축자들이 버린 돌의 말씀에 나오는 단어이며, “반드시 ~해야 한다”는 미리 기록된 하나님의 뜻을 가리킨다고 설명합니다. 마가복음 10:45에서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을 위한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주러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곳의 한 의미 결정은 불확실로 표시되어 있는데, 이 말씀이 모든 백성이 사람의 아들 같은 이를 섬기는 다니엘 7:14를 일부러 뒤집은 것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섬김을 받기 전에 먼저 섬깁니다.

오시는 인자. 셋째 묶음은 영광을 말합니다. 재판에서 대제사장이 예수님께 찬송받을 이의 아들 메시아냐고 묻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그다. 너희는 인자가 권능자의 오른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의 구름과 함께 오는 것을 볼 것이다.”

마가복음 14:62 · Open Word Bible, 균형 번역 근거와 함께 읽기 →

여기서 기록은 그 연결을 분명히 밝힙니다. 예수님은 두 본문을 하나로 묶으십니다. 주께서 왕에게 자기 오른편에 앉으라고 하시는 시편 110:1과,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구름과 함께 하나님께 나아오는 다니엘 7:13입니다. 대제사장은 옷을 찢고, 공의회는 그분을 신성 모독으로 정죄합니다(14:63–64). 이 표현이 그 밖에 무엇을 뜻했든, 그 순간 그것은 하나님 곁에 앉겠다는 주장으로 들렸습니다.

요한복음은 이 칭호를 그 나름의 방식으로 씁니다. 이 칭호가 처음 나올 때, 나다나엘은 방금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자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불렀고, 예수님은 자신이 고르신 칭호로 대답하십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려 있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인자 위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요한복음 1:51 · Open Word Bible, 균형 번역 근거와 함께 읽기 →

한 각주는 벧엘에서 야곱이 꾼 꿈을 가리킵니다. 그 꿈에서 천사들은 땅과 하늘 사이에 놓인 층계를 오르내렸습니다(창세기 28:12). 예수님은 이제 자신이 바로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일상어인가, 칭호인가?

“사람의 아들”이 단순히 “사람”을 뜻했다면, 어떻게 칭호가 되었을까요? 학자들은 백 년이 넘도록 이 문제를 두고 논쟁해 왔고, 아직 합의는 없습니다.

게자 베르메스는 예수님 시대의 아람어에서 “사람의 아들”이 자신을 겸손하게, 에둘러 가리키는 말일 수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한국어로 치면 자신을 두고 “이 사람은”이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렇게 보면 예수님이 늘 다니엘서를 암시하신 것은 아니며, 자신을 간접적으로 말씀하셨을 뿐인데 교회가 나중에 그 말씀에서 다니엘의 인물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조지프 피츠마이어를 비롯한 비판자들은, 해당 시기의 아람어 자료가 실제로 그런 용법을 보여 주는지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다른 학자들은 예수님이 일부러 다니엘의 인물을 가져다 쓰셨고, 고난에 관한 말씀들은 그 인물을 이사야 53장의 고난받는 종과 하나로 묶은 것이라고 봅니다. 또 다른 학자들은 어떤 말씀은 예수님께로 거슬러 올라가고 어떤 말씀은 초기 교회가 다듬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논쟁 밑에는 대부분이 받아들일 수 있는 더 단순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 표현은 겸손하게 쓰일 만큼 평범했고, 열려 있을 만큼 신비로웠습니다. 이 표현 덕분에 예수님은 “메시아”처럼 이미 정해진 기대가 따라붙은 칭호를 쓰지 않고도 자신에 대해 무언가를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기록은 이 역사의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습니다. 본문이 말하는 것을 설명할 뿐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이 표현을 자신에게 쓰시고, 이 표현은 다니엘 7:13–14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것이 마가복음 2:10, 8:31, 14:62, 마태복음 8:20, 요한복음 1:51의 읽기입니다.

대문자, “인자”, 그리고 “the Human One”

그래서 이 표현은 Open Word Bible에서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며, 그 차이는 의도된 것입니다.

묘사일 때에는 영어판에서 소문자로 씁니다. 에스겔서에서, 그리고 가브리엘이 다니엘을 같은 방식으로 부르는 다니엘 8:17에서는 “son of man”(사람의 아들)이고, 다니엘 7:13과 요한계시록 1:13에서는 “one like a son of man”(사람의 아들 같은 이)입니다. 요한계시록의 형태에는 그리스어에 관사가 없으며, 그곳의 기록은 이 말이 복음서의 칭호가 아니라 다니엘의 묘사를 되풀이한다고 설명합니다. 물론 17–18절은 그 인물이 예수님이심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이 쓰시는 칭호일 때에는 영어판의 모든 수준에서 대문자로 “the Son of Man”이라고 씁니다. 마가복음 2:10과 요한복음 1:51의 표현 결정은 이 칭호에 성별 표현 설정을 결코 적용하지 않는다고 기록하고, 택하지 않은 대안들을 적어 둡니다. 영어 공동성경(Common English Bible)이 쓰는 “the Human One”과 “the Son of the Human”입니다. 이런 번역은 실제로 있는 무언가를 드러냅니다. 이 표현은 정말로 사람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복음서에서 이 표현은 이름이 되었고, 이름은 익숙한 형태를 유지해야 독자가 다니엘서에서 대제사장 앞의 재판까지 그것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한국어에는 대문자가 없으므로, 한국어판은 이 구별을 다른 방법으로 합니다. 복음서의 칭호는 모든 수준에서 “인자”입니다. 마가복음 2:10, 8:31과 요한복음 1:51의 한국어 표현 결정은 “인자”를 모든 수준의 칭호로 정하고 성별 표현 설정을 적용하지 않으며, 마가복음의 두 결정은 모든 수준에서 “사람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을 택하지 않은 대안으로 적어 둡니다. 다만 쉬운 말 수준은 이 칭호를 처음 만나는 독자를 위해 단락마다 한 번 “인자, 곧 사람의 아들”이라고 풀어 줍니다. 위에 인용한 마가복음 2:10, 8:31과 요한복음 1:51의 쉬운 말 본문에서 그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이제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한국어판이 영어판의 구별을 그대로 따르지 않습니다. 1:13과 14:14에서 한국어판은 직역과 균형에 “인자 같은 분”, 쉬운 말에 “사람의 아들 같은 분”이라고 합니다. 1:13의 한국어 표현 결정은 이 인물을 다니엘 7:13의 그 인물로 보면서도 복음서가 이 칭호에 쓰는 낱말 “인자”를 쓰고, 그가 그리스도이시므로 처음부터 높임말을 씁니다. 그래서 영어판이 소문자로 지키는 묘사와 칭호의 차이가 한국어판 요한계시록의 직역과 균형에서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반면 히브리서 2:6이 시편 8편을 인용하는 곳에서는, 시편이 사람을 말하므로 한국어판이 복음서의 칭호 “인자”를 쓰지 않고, 직역은 “사람의 아들”, 균형은 “한낱 사람”, 쉬운 말은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구약의 기록은 아직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았으므로, 에스겔서와 다니엘서에서 이 묘사를 한국어로 어떻게 옮길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독자에게는 두 가지가 따라 나옵니다. 첫째, “인자”는 단순히 “하나님의 아들”과 짝을 이루는 인성의 칭호가 아닙니다. 이 칭호는 예수님이 사람이심을 말하지만, 동시에 구름과 함께 와서 영원한 나라를 받는 그 인물을 가리킵니다. 둘째, 에스겔서나 시편에 이 표현이 나올 때, 그것은 예수님을 감추어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말 그대로를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에 두시고 말을 걸기로 선택하신, 죽을 수밖에 없는 작은 사람입니다.

대안과 각주를 포함한 전체 기록은 읽기 화면에 있습니다. 다니엘 7장 열기, 에스겔 2장 열기, 시편 8편 열기, 마가복음 14장 열기. 요한계시록 1장의 사람의 아들 같은 이와 요한복음 1장에서 예수님이 나다나엘에게 하신 대답도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