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은 구약성경보다 훨씬 빨리 쓰였습니다. 스물일곱 권은 모두 예수님이 돌아가신 뒤 약 칠십 년 안에, 그 대부분은 아마 사십 년이나 오십 년 안에 쓰였습니다. 이 책들은 로마 제국 동부의 공용어인 그리스어로, 적은 수의 저자들이 썼는데, 그들은 대부분 예수를 따르던 유대인이었습니다. 이 글은 이 책들이 어떻게 쓰였고 처음에 어떻게 퍼졌는지 살펴봅니다.

기록 이전

예수님 자신은 책을 쓰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의 가르침은 아람어로, 그리고 어쩌면 때로는 히브리어나 그리스어로 말로 전해졌고, 그분을 따르던 이들이 그것을 기억했습니다. 그분의 죽음과 부활(기원후 30년 또는 33년 무렵) 뒤 처음 이십 년쯤 동안, 그분에 관한 소식은 주로 입에서 입으로 퍼졌습니다. 설교로, 새 신자를 가르치는 일로, 예배로 전해졌습니다.

신약성경 자체가 이 구전 단계를 보여 줍니다. 바울은 전통을 가리키는 전문 용어를 써서 자기가 받은 것을 전해 준다고 말합니다. “나도 받은 것을 무엇보다 먼저 여러분에게 전해 주었습니다”(고린도전서 15:3). 그러고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묻히심과 부활과 나타나심에 관한 짧은 신앙 고백을 요약하는데, 대부분의 학자들은 바울이 이것을 그 사건들이 있은 지 몇 해 안에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정형구가 고린도전서 11:23–25(주의 만찬)과 빌립보서 2:6–11(아마도 초기의 찬송)에도 나타납니다.

리처드 보컴(Richard Bauckham)은 Jesus and the Eyewitnesses(예수와 그 목격자들)에서, 복음서 전승들이 아직 살아 있고 교회들 안에서 알려져 있던, 이름이 밝혀진 목격자들과 밀접하게 이어져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다른 학자들은 전승을 빚어내는 데 공동체가 한 역할에 더 무게를 둡니다. 어느 쪽이든, 구전 단계는 고대의 기준으로 보아 짧았고, 예수를 알던 사람들의 생애와 겹쳐 있었습니다.

바울의 편지들: 가장 이른 기록

신약성경에서 가장 오래된 책들은 거의 확실히 바울의 편지들입니다.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보낸 그의 첫 편지는 보통 기원후 50년 무렵으로 보고, 갈라디아서는 그보다 이르거나 조금 늦을 수 있으며, 고린도전후서와 로마서는 50년대 중반의 것입니다. 이 편지들은 특정한 교회들에게, 특정한 문제들에 관해 쓰였고, 많은 편지가 스스로 그렇게 밝힙니다.

이 편지들은 또한 보기 드물게 길었습니다. E. 랜돌프 리처즈(E. Randolph Richards)는 파피루스에 남아 있는 개인 편지들을 세어 보고, 그 평균 길이가 약 87단어라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키케로의 편지는 평균 약 295단어, 세네카의 편지는 약 995단어입니다. 바울의 편지는 평균 약 2,500단어이며, 로마서는 7,000단어가 넘습니다. 그만한 길이의 편지에는 며칠의 작업과 파피루스 여러 장과 훈련받은 필기자가 필요했고, 리처즈는 초고와 사본까지 포함한 로마서의 비용이 오늘날 미화 이천 달러가 넘는 금액에 해당한다고 추산합니다. 그의 수치는 대략적인 것이고 몇몇 서평자들은 의문을 제기하지만, 요점은 그대로입니다. 이 편지들은 짧은 쪽지가 아니라 비용을 들여 신중하게 만든 문서였습니다.

고대의 편지는 보통 보내는 사람이 직접 손으로 쓰지 않았습니다. 비서, 곧 대필자(amanuensis)에게 받아쓰게 했습니다. 바울의 편지들은 이것을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 로마서 끝에서 비서가 자기 인사를 덧붙입니다. “이 편지를 쓰는 나 더디오도 주 안에서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로마서 16:22).
  • 몇몇 편지는 바울이 직접 펜을 잡는 것으로 끝납니다. “나 바울이 내 손으로 직접 이 인사를 씁니다”(고린도전서 16:21. 골로새서 4:18, 데살로니가후서 3:17도 보십시오). 이것은 진짜임을 보여 주는 표시였습니다.
  •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이렇게 씁니다. “내가 내 손으로 여러분에게 얼마나 큰 글자로 쓰는지 보십시오”(갈라디아서 6:11).
  • 베드로전서는 자신이 “실루아노를 통해” 쓰였다고 말합니다(베드로전서 5:12). 실루아노는 비서였을 수도, 편지를 전한 사람이었을 수도, 둘 다였을 수도 있습니다.

Open Word Bible의 이 절들에 대한 주석도 같은 점을 말합니다. 로마서 16:22에서 비서는 자기 목소리로 앞에 나섭니다.

이 편지를 받아 쓴 나 더디오도 주님 안에서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

로마서 16:22 · Open Word Bible, 균형 번역 근거와 함께 읽기 →

이 문장의 주석은 편지가 흔히 저자가 받아쓰게 하는 대로 훈련받은 필기자가 썼다고 설명합니다. 또 작은 문법 문제 하나도 기록합니다. “주 안에서”는 “문안한다”와 이어질 가능성이 가장 크지만(더디오가 같은 신자로서 그들에게 문안한다는 뜻), “썼다”와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에서 이 번역은 “내가 썼다”를 편지 쓰는 사람이 “내가 쓰고 있다”를 말하는 방식으로 봅니다. 독자가 그 말을 볼 때쯤에는 이미 지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여기서 끝맺는 줄들을 쓰려고 펜을 잡는다는 견해는 불확실로 표시합니다. 글자는 왜 컸을까요? 본문이 말하지 않으므로, 각주는 가장 그럴듯한 답인 강조를 들고, 제시되어 온 다른 답들인 나쁜 시력이나 훈련받지 않은 손도 함께 밝힙니다.

E. 랜돌프 리처즈는 비서들이 여러 방식으로 일할 수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때로는 속기로 받아쓰기를 한 단어씩 기록하기도 하고, 초고를 다듬기도 하고, 저자의 지시에 따라 글을 짓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같은 저자의 이름이 붙은 편지들 사이의 작은 문체 차이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며, 편지 쓰기가 흔히 여럿이 함께하는 일이었다는 점을 일깨워 줍니다.

이것은 실제 논쟁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많은 비평 학자들은 바울의 이름이 붙은 몇몇 편지, 특히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 그리고 어떤 이들에게는 에베소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후서도, 그가 죽은 뒤 그를 따르던 이들이 그의 이름으로 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고대 세계에 알려진 관행이었습니다. 다른 학자들은 바울이 그 편지들을 모두 썼다고 보며, 문체가 다른 이유 가운데 하나로 비서가 가질 수 있었던 재량을 듭니다. 차이는 실제로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설명하느냐에서 학자들의 길이 갈립니다. Open Word Bible은 각 편지를 그 편지가 스스로를 소개하는 대로 번역하며, 저자 문제가 제기되어 온 곳에서는 주석이 그렇다고 밝힙니다(디도서 1장처럼).

바울의 편지들은 함께 보내는 사람들의 이름도 밝힙니다. 소스데네, 디모데, 실루아노입니다. 그리고 편지들은 그 내용을 설명할 수 있는 믿을 만한 전달자들이 날랐습니다. 겐그레아 교회의 집사 뵈뵈는 아마 로마서를 전한 사람이었을 것이고(로마서 16:1–2), 두기고는 골로새서와 에베소서를 전했습니다(골로새서 4:7–8, 에베소서 6:21–22).

소리 내어 읽고 함께 나누다

편지들은 모인 교회 앞에서 소리 내어 읽히도록 쓰였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27에서 “나는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엄숙히 명합니다. 이 편지를 거룩한 형제들 모두에게 읽어 주십시오”라고 씁니다. 그리고 편지들은 나누어 읽도록 의도되었습니다. “이 편지를 여러분 가운데서 읽은 뒤에는 라오디게아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여러분도 라오디게아에서 오는 편지를 읽으십시오”(골로새서 4:16).

이렇게 나누려면 베껴 써야 했습니다. 다른 곳으로 넘겨준 편지를 간직하고 싶은 교회나, 다른 교회에 보낸 편지를 읽고 싶은 교회에는 사본이 필요했습니다. 일찍부터 바울의 편지들은 모아졌고, 그때그때의 서신 이상의 것으로 읽혔습니다. 기록 연대가 논란이 되는 편지인 베드로후서 3:15–16은 “그의 모든 편지”를 말하며 그것들을 “다른 성경”과 나란히 놓습니다. 우리는 한 편지가 처음 받은 교회 밖에서 쓰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1세기 말 무렵, 로마 교회는 클레멘스1서*로 알려진 편지에서 고린도 교회에 그곳에서 새로 생긴 다툼에 관해 썼습니다. 이 편지는 그들에게, 문자 그대로 옮기면 “복된 사도 바울의 편지를 집어 드십시오”라고 말하고, 바울이 이미 그들이 바울과 게바와 아볼로를 내세우며 편을 가른 일을 꾸짖었다는 것을 일깨웁니다(*클레멘스1서 47.1–3, 고린도전서 1:12를 떠올리게 함). 로마의 저자는 고린도전서를 알고 있고, 바울이 그 편지를 쓴 지 사십 년이 지났는데도 고린도 사람들이 그것을 아직 가지고 있으리라고 여깁니다.

해리 갬블(Harry Gamble)은 Books and Readers in the Early Church(초기 교회의 책과 독자)에서, 1세기 말에는 바울 서신의 모음집이 돌고 있었으며,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코덱스라고 부르는 책의 형태를 받아들인 주된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고 주장합니다(파피루스, 양피지, 코덱스를 보십시오).

복음서

네 복음서는 다른 종류의 글입니다.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과 죽음과 부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대부분의 학자는 이 책들을 기원후 65년 무렵에서 95년 무렵 사이로 보며, 마가복음이 가장 이르고 요한복음이 가장 늦다고 보지만, 더 이른 연대를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 논증의 주요 쟁점 가운데 하나는 기원후 70년 로마군이 예루살렘 성전을 무너뜨린 일입니다. 예수님은 처음 세 복음서 모두에서 그 일을 예언하시고(마가복음 13:2, 마태복음 24:2, 누가복음 21:6), 누가는 예루살렘이 “군대에게 포위된” 모습을 말합니다(누가복음 21:20). 복음서들이 그 사건을 알고 있다고 보는 학자들은 복음서를 70년 이후로 보고, 다른 학자들은 예언자라면 포위 공격을 내다볼 수 있었다고 대답합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에게 이 문제는 연대를 십 년이나 이십 년쯤 움직입니다.

자료.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은 많은 내용을 공유하며, 그리스어로 단어 하나하나까지 같은 경우도 많습니다.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설명은, 마태와 누가가 둘 다 마가복음을 썼고, 학자들이 “Q”라고 부르는, 지금은 사라진 또 하나의 공통 어록 자료를 함께 썼다는 것입니다. 다른 설명들도 있으며, 이 문제는 아직 논쟁 중입니다. 누가는 자기가 앞선 자료들을 썼다고 숨김없이 말합니다. “처음부터 목격자이며 말씀의 일꾼이었던 사람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그대로, 우리 가운데서 이루어진 일들에 관한 이야기를 차례대로 엮으려고 손을 댄 사람이 많았습니다”(누가복음 1:1–2). 그는 “모든 일을 처음부터 자세히 살펴서” 썼으며, 그 목적은 독자가 자기가 배운 것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누가복음 1:3–4).

이름. 복음서들은 본문 안에서 자기 저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습니다. “마태에 따른” 같은 전통적인 제목들은, 책의 첫머리나 끝부분이 보존된 가장 이른 사본들과 2세기 저술가들에게서 확인됩니다. 2세기 초 소아시아의 감독 파피아스(Papias)는, 마가가 베드로의 가르침을 순서대로는 아니지만 정확하게 받아 적었고, 마태는 어록을 “히브리어로” 엮었다고 말했습니다(에우세비오스, 교회사 3.39.15–16에 인용됨). 마르틴 헹엘(Martin Hengel)은 교회 전체에 걸쳐 복음서 제목들이 일관된다는 것은 그 제목들이 매우 일찍, 교회들이 서로 구별해야 할 복음서를 둘 이상 갖게 되자마자 붙었음이 틀림없다는 뜻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요한. 넷째 복음서는 자신이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의 증언에 기대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 일들을 증언하고 이것들을 기록한 사람이 바로 이 제자입니다.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되다는 것을 압니다”(요한복음 21:24). 여기서 “우리”는 그와 관련된 한 무리인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책들

사도행전은 누가가 쓴 작품의 둘째 권으로(사도행전 1:1), 예수님에게서 시작해 기원후 60년대 초에 교회가 로마에까지 퍼지는 이야기를 이어 갑니다.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요한일이삼서, 유다서 같은 다른 편지들은 더 넓은 독자들에게 쓰였고, 그 연대와 저자는 책마다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논쟁됩니다. 예언적이고 묵시적인 책인 요한계시록은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내졌으며(요한계시록 1:4, 11), 보통 기원후 90년대로 봅니다.

그리스어로 쓰이다

신약성경은 고전 아테네의 다듬어진 문학 그리스어가 아니라, 로마 제국 동부의 일상 그리스어인 코이네(“공통”) 그리스어로 쓰였습니다. 저자들의 문체는 마가의 단순하고 직접적인 문체에서 누가와 히브리서의 더 문학적인 그리스어까지 다양했습니다. 그들의 언어는 그리스어 구약성경인 칠십인역의 영향도 받았습니다. 19세기 후반 이집트에서 수천 개의 일상적인 파피루스 문서가 발견되면서, 한때 특별한 “성경 그리스어”로 여겨지던 많은 단어가 실제로는 당시의 평범한 단어였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아돌프 다이스만(Adolf Deissmann)이 보여 주었듯이, 신약성경은 사람들의 언어로 쓰였습니다.

원본에서 사본으로

바울의 비서들이나 복음서 저자들이 쓴 원래 문서, 곧 원본(autograph)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고대 세계의 거의 모든 책이 그렇습니다. 파피루스는 약하고, 자주 읽힌 문서는 닳아 없어졌습니다. 그 대신 우리에게 있는 것은 사본들, 그리고 사본의 사본들입니다.

그러나 기록과 남아 있는 첫 사본들 사이의 간격은 고대의 기준으로 보아 짧고, 사본의 수는 매우 많습니다. 이 시리즈의 나머지 글들은 그 사본들을 살펴봅니다. 누가 그것을 만들었는지, 무엇이 남아 있는지, 그리고 학자들이 그것들에서 출발해 저자들이 쓴 본문으로 어떻게 거슬러 올라가는지를 다룹니다.

참고 문헌

  • Bauckham, Richard. Jesus and the Eyewitnesses: The Gospels as Eyewitness Testimony. 2nd ed. Grand Rapids: Eerdmans, 2017.
  • Deissmann, Adolf. Light from the Ancient East. Translated by Lionel R. M. Strachan. London: Hodder & Stoughton, 1910.
  • Eusebius. Church History 3.39.
  • Gamble, Harry Y. Books and Readers in the Early Church: A History of Early Christian Texts.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95.
  • Clement of Rome. 1 Clement 47.1–3.
  • Hengel, Martin. The Four Gospels and the One Gospel of Jesus Christ. Harrisburg, PA: Trinity Press International, 2000.
  • Richards, E. Randolph. Paul and First-Century Letter Writing: Secretaries, Composition and Collection.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2004.
  • Dunn, James D. G. Jesus Remembered. Christianity in the Making 1. Grand Rapids: Eerdmans, 2003.
  • 성경 인용문은 월드 잉글리시 바이블(퍼블릭 도메인)을 바탕으로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다만 이 글이 자체의 문자적 번역을 제시하는 곳은 예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