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그리스어 세 낱말로 자신을 소개합니다. Παῦλος δοῦλος, 곧 “바울, doulos”입니다. 킹 제임스 역본(KJV)은 이것을 “Paul, a servant of Jesus Christ”(예수 그리스도의 하인 바울)로 옮겼습니다. 어떤 현대 번역은 “slave”(노예)라고 하고, 어떤 번역은 “bondservant”(매인 종)라고 하며, 많은 번역은 여전히 “servant”(하인)라고 하고 흔히 각주를 붙입니다.

이 차이는 작지 않습니다. 현대 영어 독자에게 “servant”는 고용된 사람입니다. 집사, 가정부, 공무원(civil servant) 같은 사람입니다. “slave”는 다른 사람에게 소유된 사람입니다. 그리스어 낱말은 두 번째를 뜻합니다. 그런데 “slave”라는 말은 대서양 노예 무역과 아메리카의 대농장을 떠올리게 하는데, 그것 역시 바울이 알던 것과 꼭 같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같은 낱말이 그리스어에서도 히브리어에서도 성경의 가장 높은 영예의 칭호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주의 종”이 바로 그것입니다.

원문이 하는 일을 모두 해내는 영어 낱말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 글은 그 이유와, Open Word Bible이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지 설명합니다. 한국어에서는 사정이 조금 다릅니다. 한국어 성경의 전통적인 낱말 “종”은 고용된 일꾼이 아니라 주인에게 속한 사람을 뜻하고, “노예”는 노예 제도 자체를 분명히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글 끝부분에서 한국어판의 선택도 함께 소개합니다.

낱말들의 뜻

그리스어 δοῦλος(doulos)는 노예를 가리키는 일반적인 낱말입니다. 그 뜻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로마서 1:1의 의미 결정은 이것을 분명하게 말합니다. “노예, 곧 다른 사람에게 소유된 사람”. 그리스어에는 소유되지 않고 섬기는 사람을 가리키는 다른 낱말들이 있었습니다. *diakonos*는 다른 사람의 시중을 드는 사람이었고, *misthios*는 품삯을 받고 일하는 일꾼이었으며, *hypēretēs*는 보조자나 관리였습니다.

히브리어 עֶ֣בֶד(ʿeved)는 범위가 더 넓습니다. 이 말은 “일하다” 또는 “섬기다”라는 동사에서 왔으며, 폭넓은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돈으로 산 노예, 빚을 갚으려고 일하는 채무자, 왕의 신하, 속국의 왕,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궁정의 신하들은 왕의 *ʿavadim*입니다. 사람들은 윗사람에게 공손하게 말할 때 자신을 “당신의 종”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용법의 많은 경우에 “노예”는 틀린 말이 될 것입니다. 다른 경우에는 “하인”이 실제로 일어나던 일을 가립니다.

이스라엘의 노예 제도

구약의 율법은 노예 제도를 폐지하지 않지만, 그것을 제한하고 규제하며, 어떤 종류는 다른 종류와 매우 다르게 다룹니다.

빚을 진 이스라엘 사람은 그 빚을 갚으려고 자기 몸을 팔거나 팔릴 수 있었습니다. 그의 섬김에는 기한이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21:2는 바로 이 경우로 노예에 관한 법을 시작합니다. 출애굽기는 아직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아, 아래에는 영어판 균형 수준의 본문이 보입니다.

When you acquire a Hebrew slave, he will serve six years; then in the seventh year he is to be released, free and owing nothing.

출애굽기 21:2 · Open Word Bible, 균형 번역 근거와 함께 읽기 →

이 절의 의미 결정은 신중합니다. 이 결정은 그를 “빚 때문에 종살이하는 동족 히브리 사람으로, 그 기한은 여섯 해로 제한된다”고 부르고, 이것이 노예를 주인의 “돈”이라고 부르며 평생 매여 있게 하는 20–21절의 “재산으로서의 노예 제도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레위기 25장은 더 나아갑니다. 자기 몸을 판 이스라엘 사람에게는 “노예의 일”을 시켜서는 안 되고 품꾼처럼 대해야 하며, 그는 희년에 자유롭게 풀려납니다(25:39–40). 그 이유는 신학적입니다. “그들은 내가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 나의 종들이다. 그들을 노예를 팔듯이 팔아서는 안 된다”(25:42).

같은 장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주변 민족들에게서 노예를 사서 영구히 소유하고, 재산처럼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을 허용합니다(25:44–46). 율법은 몇 가지 방식으로 노예를 보호하기도 했습니다. 주인 때문에 눈이나 이를 잃은 노예는 자유롭게 풀려났고(출애굽기 21:26–27), 도망친 노예를 그 주인에게 돌려보내서는 안 되었습니다(신명기 23:15–16). 이런 법들은 당시 세계의 기준으로 보면 인도적이었습니다. 그래도 이 법들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이 모든 것 위에 출애굽이 서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노예였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출애굽기 20:2). 율법은 노예와 나그네를 대할 때 그들도 한때 이집트에서 노예였음을 기억하라고 이스라엘에게 거듭 말합니다(신명기 15:15; 24:18).

로마 세계의 노예 제도

바울 시대의 노예 제도는 또 달랐습니다. 노예는 특히 도시에서 인구의 큰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역사가들의 추정은 서로 다르지만, 고린도나 에베소 같은 곳에서는 눈에 띄게 큰 비율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전쟁 포로가 되어서, 노예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나서, 갓난아기 때 버려져서, 빚 때문에, 또는 자기 몸을 팔아서 노예가 되었습니다. 노예 제도는 인종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었습니다.

노예들은 광산과 밭에서부터 재산 관리와 아이들 교육에 이르기까지 온갖 일을 했습니다. 예수님의 달란트 비유와 므나 비유에서처럼, 신임받는 노예는 주인의 큰돈을 맡아 관리하기도 했습니다. 도시의 많은 노예는 이삼십 대에 해방되기를 바랄 수 있었고, 해방된 노예는 이전 주인을 후견인으로 모시며 충성을 바쳐야 했습니다. 그러나 법에서 노예는 재산이었습니다. 노예는 매를 맞을 수 있었고, 팔릴 수 있었고, 가족과 헤어질 수 있었고, 성적으로 이용당할 수 있었으며, 거부할 법적 권리가 없었습니다.

“주의 종”

노예의 지위는 그가 누구의 노예인지에 달려 있었습니다. 이것이 이 낱말의 가장 중요한 종교적 용법을 설명해 줍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ʿeved*가 되는 것은 영예의 칭호였습니다. 모세는 죽을 때 “주의 종”이라고 불리고(신명기 34:5), 여호수아도 죽을 때 그렇게 불립니다(여호수아 24:29). 하나님은 다윗을 “나의 종”이라고 부르십니다. 예언자들은 “나의 종 예언자들”입니다.

이사야 40–55장에서 이 칭호는 “나의 종”에 관한 일련의 시의 중심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붙드시고 그를 통해 민족들에게 정의가 이루어지는 종(이사야 42:1), 멸시를 받고 다른 사람들의 죄 때문에 고난을 받다가 마침내 “높이 들려 올라가는” 종입니다(52:13). 이사야서를 그리스어로 옮긴 번역자들은 여기서 종을 대개 *doulos*가 아니라 *pais*로 옮겼는데, 이 말은 “종”뿐 아니라 “아이”를 뜻할 수도 있습니다. 마태는 이사야 42장을 예수께 적용하여 인용할 때 그들을 따릅니다(마태복음 12:18). 한국어판 마태복음은 이곳에서 모든 수준에 “나의 종”, “내 종”이라고 씁니다.

이런 언어에서 하나님의 노예가 된다는 것은 존재하는 가장 위대한 주인에게 온전히 속한다는 뜻이었습니다. 그것은 의존과 순종을 뜻했지만, 영예와 신뢰와 보호도 뜻했습니다. 그래서 이 말은 번역하기가 그토록 어렵습니다. 영어에서 “slave of the LORD”(주의 노예)는 비하하는 말처럼 들립니다. “servant of the LORD”(주의 하인)는 고용인처럼 들립니다. 둘 중 어느 것도 두 측면을 한꺼번에 담지 못합니다.

바울의 자기소개

바울이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의 *doulos*라고 부를 때(로마서 1:1; 빌립보서 1:1; 갈라디아서 1:10), 그는 두 세계를 모두 끌어옵니다. 다른 사람에게 소유된 사람을 가리키는 로마 세계의 낱말을 쓰면서, 모세와 예언자들에게 붙여진 구약의 칭호를 메아리칩니다. 로마서 1:1의 의미 결정은 둘 다 말합니다. 바울은 “그분께 온전히 속해 있으며 그분의 명령에 따라 행동한다”. 그리고 이 낱말은 “모세와 다윗과 예언자들에게 주어진 구약의 칭호 ‘주의 종’을 떠올리게 하므로, 소속의 칭호일 뿐 아니라 영예의 칭호이기도 하다”.

바울은 빌립보서 2:7에서 이 언어를 가장 강하게 밀어붙입니다. “하나님의 모습”으로 계셨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비우시고 “노예의 모습”을 취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곳의 의미 결정은 이 낱말이 “여기서는 ‘하나님의 모습’과, 11절에서는 ‘주’와 맞서 있다”고 적고, 로마가 노예들에게 십자가형을 썼다고 덧붙입니다. “7절의 노예의 모습은 노예의 죽음으로 끝난다.”

영어 성경들은 이것을 어떻게 다루어 왔는가

초기 영어 성경들은 대부분 “servant”라고 했습니다. 틴들 성경, 제네바 성경, 킹 제임스 역본은 거의 모든 곳에서 *doulos*를 이 말로 옮겼습니다. 1611년에 “servant”는 주인에게 매여 있어 마음대로 떠날 수 없는 사람들까지 포함할 수 있었으므로, 이 말은 지금보다 그리스어에 더 가까웠습니다. 노예와 자유인을 나란히 둔 곳에서 킹 제임스 역본은 흔히 “bond”라고 했습니다. “there is neither bond nor free”(매인 사람도 자유인도 없다, 갈라디아서 3:28).

많은 현대 번역은 여전히 “servant”라고 하고, 대개 “또는 노예”라는 각주를 붙입니다. 다른 번역들은 New American Standard Bible이 여러 곳에서 하듯이 “bondservant”나 “bond-servant”를 시도했습니다. 이 낱말은 단순한 고용 이상의 무언가를 뜻한다는 신호를 주지만, 대부분의 영어 사용자가 쓰는 말이 아니며, 그것이 가리키는 현실을 누그러뜨릴 수 있습니다. 여러 학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slave”를 써야 한다고 주장해 왔는데, Slave of Christ(1999)의 머리 J. 해리스(Murray J. Harris)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Holman Christian Standard Bible과 Legacy Standard Bible은 옛 역본들보다 훨씬 자주 “slave”를 씁니다.

선택마다 대가가 있습니다. “servant”는 익숙하고 “주의 종”의 영예를 지켜 주지만, 소유되었다는 사실을 가리고, 값을 주고 사들여지고 자유롭게 된다는 바울의 언어를 따라가기 어렵게 만듭니다. “slave”는 정확하지만 인종에 바탕을 둔 재산으로서의 노예 제도를 떠올리게 합니다. “bondservant”는 그 중간에 있으며, 분명하게 알아듣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도덕적인 무게

이것은 정확성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수 세기 동안 노예에 관한 성경 구절들은 노예 제도를 옹호하는 데 쓰였습니다. 미국 남부의 노예 제도 옹호자들은 “땅의 주인에게 순종하십시오”라는 노예들에게 준 말씀(에베소서 6:5)과 가나안에게 내린 저주(창세기 9:25)를 인용했습니다. 1807년 런던에서 영국령 서인도 제도의 노예들을 위해 출판된 한 축약 성경은 출애굽 이야기의 대부분을 뺐습니다. 한편 노예가 된 그리스도인들은 같은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노예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이야기를 들었고, 노예 제도 폐지론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노예도 자유인도 없다”는 바울의 말에 호소했습니다.

번역은 그 역사를 되돌릴 수 없으며, 그것을 감추려 해서도 안 됩니다. 창세기 9:25에 대한 우리 기록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이 절은 “‘함의 저주’라는 잘못된 생각 아래 아프리카 사람들을 노예로 삼는 일을 정당화하는 데 잘못 쓰였다.” 그러나 본문은 가나안만을 저주하며 “피부색이나 인종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에베소서 6장 같은 본문에서 “노예”를 “하인”으로 옮기면 고용인에게 주는 조언처럼 들리게 되고, 본문이 실제로 말하는 것을 슬그머니 지워 버릴 것입니다. 모든 곳에서 “노예”로 옮기면 하나님의 종들이 누리는 영예가 비하처럼 들리게 될 것입니다. 두 가지 왜곡 모두 결과를 낳습니다.

Open Word Bible이 하는 일

Open Word Bible은 다른 어려운 낱말들을 다루듯 이 문제를 다룹니다. 의미 결정은 하나이고, 표현은 수준에 따라 달라집니다. 영어판의 기본 방침은 영어 문체 지침이 정합니다.

뜻은 언제나 밝힌다. *doulos*나 *ʿeved*가 들어 있는 모든 문장에는 그 사람의 처지가 어떠했는지 말하는 의미 결정이 있습니다. 고용된 사람이 아니라 소유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 결정은 모든 수준, 모든 언어에 적용됩니다.

영어판 직역은 “slave”라고 한다. 이 낱말의 날카로운 면을 보고 싶은 독자는 그것을 봅니다. “Paul, a slave of Christ Jesus”(그리스도 예수의 노예 바울, 로마서 1:1), “Moses the slave of the LORD”(주의 노예 모세, 여호수아 1:1), “the form of a slave”(노예의 모습, 빌립보서 2:7).

영어판 균형과 쉬운 말은 대개 “servant”라고 한다. 표현 결정들은 그 이유를 되풀이합니다. 의미 결정이 “그 사람이 소유되었다는 것”을 지키고 있으므로, 더 평이한 두 수준은 “‘slave’가 대부분의 독자에게 불러일으키는 현대의 재산 노예 제도의 그림”을 피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어판 균형에서 로마서 1:1은 “a servant of Christ Jesus”라고 하고, 마리아는 “I am the Lord’s servant”(저는 주님의 종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쉬운 말은 마리아의 말을 풀어서 설명합니다. “I belong to the Lord, and I am ready to do what he wants”(저는 주님께 속한 사람이니,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노예 제도 자체가 요점인 곳에서는 모든 수준에서 “slave”를 그대로 둔다. 문체 지침은 그런 경우들을 열거합니다. 노예가 자유인이나 해방된 사람과 맞서 있는 곳, 사람을 사고팔거나 소유하거나 풀어 주는 곳,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이 노예였던 일, 자유와 맞서 있는 죄의 노예 됨, 그리고 “slave”가 “servant”보다 한 단계 낮은 것으로 맞서 있는 말씀들입니다. 그런 문장마다 그 이유를 밝히는 표현 결정이 붙어 있습니다. 출애굽기 21:2와 레위기 25:39–42는 모든 수준에서 “slave”라고 합니다. 이 법들이 사고팔고 풀어 주는 일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3:28은 “no slave or free person”(노예도 자유인도 없다)이라고 합니다. 마가복음 10:43–44에서 예수께서는 큰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은 “your servant”(너희를 섬기는 사람)가 되어야 하고, 첫째가 되고 싶은 사람은 “slave of all”(모든 사람의 노예)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영어판의 표현입니다. 여기서는 서로 다른 그리스어 낱말 둘이 나란히 서 있고, 표현 결정은 “섬기는 사람에서 노예로 한 단계 내려가는 것이 요점”이라고 설명합니다.

에베소서 6장은 “slaves”를 그대로 둔다. 기록은 바울이 “사회 계층으로서의 노예, 곧 실제로 소유된 사람들에게 말한다”고 하며, “servant”는 뜻을 바꿀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곳의 의미 결정은 이 편지가 “노예 제도가 있어야 하는지는 논하지 않는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며, 노예와 주인을 한 주님 아래 둔다”고 덧붙입니다.

한국어판은 “종”을 기본으로 삼는다. 한국어 문체 지침은 *doulos*를 모든 수준에서 “종”으로 옮기고, 노예 제도 자체가 요점인 곳에서는 “노예”를 쓰도록 정합니다. 로마서 1:1의 한국어 표현 결정이 그 이유를 밝힙니다. “종”은 한 사람이 주인에게 속해 있다는 것을 분명히 말하면서도, “노예”가 불러일으키는 그림을 피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어판은 로마서 1:1에서 모든 수준에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고 하고, 누가복음 1:38에서는 직역과 균형에 “주님의 여종”, 쉬운 말에 “저는 주님께 속한 사람입니다”라고 합니다. 마가복음 10:43–44에서는 모든 수준에서 “섬기는 사람”과 “종”을 씁니다. 한국어에서는 이 두 말만으로도 그 한 단계 내려감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편지들에서도 같은 원칙을 따릅니다. 갈라디아서 1:10에서 바울은 모든 수준에서 “그리스도의 종”이고, 빌립보서 2:7에서 그리스도께서 취하신 것도 모든 수준에서 “노예의 모습”이 아니라 “종의 모습”입니다. 그곳의 표현 결정은 “종”이 주인에게 온전히 속한 사람을 말하면서도 현대 노예 제도의 그림을 떠올리게 하지 않으므로, 그리스도의 모습이 빌립보서 1:1의 바울과 디모데와 같은 낱말이 된다고 설명합니다. 반면 노예 제도 자체가 요점인 곳, 곧 갈라디아서 3:28(“노예도 자유인도 없으며”), 고린도전서 7:21–23, 에베소서 6장에서는 모든 수준에서 “노예”라고 합니다.

빌레몬서

빌레몬에게 보낸 짧은 편지는 가장 날카로운 시험대입니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집안에 속한 노예였습니다. 그는 바울에게 왔고, 바울을 통해 신자가 되었습니다. 전통적인 견해는 그가 도망쳤다는 것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그가 주인과의 다툼에서 도움을 청하려고 바울에게 왔다고 봅니다. 바울은 이 편지와 함께 그를 돌려보내며, 16절에서 그를 οὐκέτι ὡς δοῦλον ἀλλὰ ὑπὲρ δοῦλον, ἀδελφὸν ἀγαπητόν라고 묘사합니다.

그가 잠시 당신을 떠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이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당신이 그를 영원히 돌려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제는 노예로서가 아니라 노예 이상인 사람, 곧 사랑하는 형제로서 말입니다. 그는 특히 나에게 사랑하는 형제입니다. 그러니 일상의 삶에서도 주님 안에서도 당신에게는 얼마나 더 그렇겠습니까!

빌레몬서 1:15 · Open Word Bible, 균형 번역 근거와 함께 읽기 →

표현 결정은 여기서 모든 수준에 “노예”를 둡니다(영어판은 “slave”). 이 절이 소유된 사람이라는 오네시모의 신분을 형제라는 새 자리와 맞세우기 때문입니다. 한국어 표현 결정은 “종”을 대안으로 적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영어로 “no longer as a servant”(더 이상 하인으로서가 아니라)라고 하면 요점 전체를 잃게 될 것입니다.

바울이 무엇을 요청하는지는 논란이 있습니다. 의미 결정은 불확실하다고 표시되어 있고, 각주가 다른 견해를 소개합니다. 이 결정은 “더 이상 노예로서가 아니라”를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형제로 맞아들이고 대해야 한다는 뜻으로 보며, “바울이 그의 법적 해방을 요청하는지는 말하지 않는다”고 적습니다. 21절의 “당신은 내가 말하는 것보다 더 많이 할 것입니다”는 해방을 암시할 수도 있고, 오네시모가 돌아와 바울을 돕는 것을 암시할 수도 있습니다. 기록은 편지가 그러하듯 이 문제를 열어 둡니다.

고린도전서 7장

고린도의 노예들에게 준 바울의 조언은 유명한 문법 문제를 일으킵니다. 우리 한국어 직역은 고린도전서 7:21을 이렇게 옮깁니다.

당신은 노예로 부르심을 받았습니까? 그것을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자유인이 될 수 있다면 오히려 [그 기회를] 이용하십시오.

그리스어의 마지막 낱말들은 목적어 없이 그냥 “오히려 이용하라”뿐입니다. 그래서 직역은 “그 기회를”을 대괄호에 넣습니다. 무엇을 이용하라는 것입니까? 자유입니까, 아니면 지금의 노예 상태입니까?

Open Word Bible은 이것을 “자유롭게 될 기회를 잡으라”로 보고, 우리 한국어 균형은 “그 기회를 잘 살리십시오”, 쉬운 말은 “그 기회를 잡으십시오”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결정은 불확실하다고 표시되어 있고, 그 각주는 “두 읽기 모두 오래전부터 지지를 받아 왔으며, 증거는 팽팽하게 맞서 있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다음 절은 두 신분을 모두 뒤집습니다.

주님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노예는 주님께서 자유롭게 하신 사람입니다. 마찬가지로 부르심을 받은 자유인은 그리스도의 노예입니다.

고린도전서 7:22 · Open Word Bible, 균형 번역 근거와 함께 읽기 →

초안이 아직 일관되지 않은 곳

이런 원칙을 성경 전체에 적용하려면 판단이 필요하며, 초안들은 아직 모든 곳에서 같은 방식으로 적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어판 이사야서에서는 이 책의 용어 목록이 직역 수준에서도 주의 종을 “servant”로 정하므로, 이사야 42:1과 52:13은 모든 수준에서 “my servant”(나의 종)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호수아 1:1은 직역에서 “Moses the slave of the LORD”(주의 노예 모세)라고 합니다. 두 선택 모두 변호할 수 있습니다. 검토자는 이 칭호가 두 책에서 같게 읽혀야 하는지 정해야 할 것입니다. 초안들은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되었으며, 아직 하나도 검토되지 않았습니다.

낱말 대 낱말인가, 뜻 대 뜻인가?와 직역, 균형, 쉬운 말: 세 가지 수준, 하나의 의미도 보십시오.

빌레몬서, 로마서 1장, 고린도전서 7장을 열어 기록을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