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히브리어 일곱 단어로 시작합니다.

בְּרֵאשִׁ֖ית בָּרָ֣א אֱלֹהִ֑ים אֵ֥ת הַשָּׁמַ֖יִם וְאֵ֥ת הָאָֽרֶץ

창세기 1:1 · 히브리어, 웨스트민스터 레닌그라드 사본 번역 근거와 함께 읽기 →

Open Word Bible의 균형 수준은 이 단어들을 익숙한 방식으로 옮깁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창세기 1:1 · Open Word Bible, 균형 번역 근거와 함께 읽기 →

그 익숙함 뒤에는 생각보다 많은 결정이 숨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둘은 판단이 아주 어려운 것이어서, 각 절의 기록은 그것들을 *불확실*로 표시합니다.

성경이 시작하는 곳

창세기 1:1은 2:3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를 엽니다. 이 이야기는 날들로 짜여 있습니다. 처음 사흘 동안 하나님께서는 빛과 어둠을, 위의 물과 아래의 물을, 바다와 마른 땅을 나누어 세상에 모양을 주십니다. 다음 사흘 동안에는 그렇게 모양을 갖춘 것을 채우십니다. 광명체들로, 새와 물고기로, 짐승과 사람으로 채우십니다. 일곱째 날에 그분은 쉬십니다. 이 이야기는 처음 시작할 때와 똑같은 한 쌍의 말, 곧 하늘과 땅으로 끝을 맺습니다(2:1).

그러니 첫 절은 첫 사건 이상의 것입니다. 뒤따르는 모든 이야기의 주제 전체를 밝히고, 행하시는 분이 누구인지 밝힙니다. 그다음 서른 절은 이것을 펼쳐 보이며, 여섯째 날과 사람의 창조에서 절정에 이릅니다(“우리의 형상대로”를 보십시오). 이 한 쌍의 말은 거기서 더 멀리까지 갑니다. 성경은 마지막 책의 끝 가까이에서 다시 이 말로 돌아옵니다.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다”(요한계시록 21:1).

“태초에”인가, “하나님께서 창조하기 시작하실 때”인가?

첫 단어 בְּרֵאשִׁ֖ית는 두 부분이 한 단어로 붙어 쓰인 것입니다. “~에”를 뜻하는 작은 접두사와, “처음, 시작”을 뜻하는 명사 רֵאשִׁית입니다. 이 명사에는 관사가 없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시작에”이며, 그래서 어떤 번역자들은 이 절을 뒤에 오는 말로 이어지는 시간의 절로 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기 시작하실 때, 땅은 형체가 없고 비어 있었으며…”처럼 말입니다. 창세기 2:4도 “주 하나님께서 … 만드시던 날에”라는 비슷한 방식으로 두 번째 이야기를 엽니다.

Open Word Bible은 1절을 그 자체로 완결된 문장으로 읽습니다. 기록은 두 가지 이유를 듭니다. 본문을 소리 내어 읽는 방법을 안내하는 옛 표시인 마소라 악센트가 첫 단어 뒤에 쉼을 두어, 그 단어가 그 자체로 완결된 것으로 읽히게 합니다. 그리고 가장 오래된 번역인 칠십인역도 이 절을 주절로 읽습니다. 요한복음 1:1이 이 절을 메아리처럼 되울리며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고 할 때도 그렇습니다. “말씀은 하나님이셨다”를 보십시오.

다른 읽기에도 긴 역사가 있습니다. 11세기의 위대한 유대인 주석가 라시(Rashi)는 첫 단어 뒤에는 언제나 그것이 무엇의 시작인지가 따라온다고 주장하며, 이 절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던 처음에”로 읽었습니다. 유대 출판 협회(Jewish Publication Society)의 1985년 번역인 타나크(Tanakh)는 다른 여러 현대 번역처럼 이 절을 시간의 절로 받아들입니다.

이 차이는 생각만큼 크지는 않지만, 실제로 있는 차이입니다. 주절로 읽으면 1절은 포괄적인 선언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장의 나머지 부분은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보여 줍니다. 시간의 절로 읽으면 1절은 3절을 위한 배경을 깔고, 2절은 하나님께서 시작하실 때의 상태를 묘사합니다. 두 읽기 모두 오래되었고, 두 읽기 모두 변호할 만합니다. 그래서 이 결정은 불확실로 표시되고, 각주가 다른 읽기를 제시합니다. 기록은 어느 쪽으로 읽든, 다른 무엇이 묘사되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미 거기 계시며 일하고 계신다는 말을 덧붙입니다.

직역 수준은 빠진 관사를 대괄호에 넣어 보여 줍니다(영어 직역의 경우입니다. 한국어에는 관사가 없으므로 한국어 직역은 그냥 “태초에”라고 합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창세기 1:1 · Open Word Bible, 직역 번역 근거와 함께 읽기 →

창조하셨다, 하나님, 하늘과 땅

절의 나머지 부분에는 그보다 조용한 결정이 세 가지 있습니다.

  • 창조하셨다. 동사 בָּרָא는 구약성경에서 오직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만 쓰이며, 무엇을 만드는 데 쓰인 재료와 함께 쓰이는 일이 없습니다. 창세기 1장은 이 동사를 세 곳에서 씁니다. 하늘과 땅, 처음 살아 있는 피조물들(21절), 그리고 사람(27절)입니다. 기록은 지나친 주장을 하지 않도록 조심합니다. 이 장은 하나님의 일에 일상적인 동사 “만드셨다”도 쓰므로, 이 동사 하나만으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창조하셨는지가 결정되지는 않습니다. 첫 절이 분명히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존재하는 모든 것보다 먼저 계시고 그 모든 것 위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 אֱלֹהִ֑ים는 형태로는 복수이며, 다른 곳에서는 “신들”을 뜻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는 동사가 단수, 곧 “그가 창조하셨다”이며, 장 전체에서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한 분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히브리어는 위대함을 나타내려고 복수를 쓰는 일이 많습니다.
  • 하늘과 땅. 서로 반대되는 두 끝을 말하여 그 사이의 모든 것을 뜻하는 것은 흔한 히브리어 표현 방식이며, 히브리어에는 우주를 가리키는 단어 하나가 따로 없습니다. 그래서 쉬운 말은 이 한 쌍이 뜻하는 바를 밝히면서도 그 말들을 그대로 둡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 곧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영인가, 바람인가?

2절은 하나님께서 처음 말씀하시기 전에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묘사합니다.

땅은 아직 형체가 없고 텅 비어 있었다. 어둠이 깊은 물 위를 덮고 있었고, 하나님의 영께서 그 물 위를 맴돌고 계셨다.

창세기 1:2 · Open Word Bible, 균형 번역 근거와 함께 읽기 →

“형체가 없고 텅 비어”는 운이 맞는 두 단어 תֹ֨הוּ֙ וָבֹ֔הוּ를 옮긴 것입니다. 기록은 장의 나머지 부분이 이 둘 모두에 답한다고 지적합니다. 첫째 날부터 셋째 날까지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형체를 주시고, 넷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 그것을 채우십니다.

판단이 어려운 곳은 וְר֣וּחַ אֱלֹהִ֔ים입니다. 명사 רוּחַ는 숨, 바람, 또는 영을 뜻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쓰이면 “거센 바람”을 뜻할 수도 있습니다. 히브리어는 때때로 “하나님의”를 “아주 큰”이라는 뜻으로 쓰기 때문이며, 홍수 뒤에 하나님께서는 물 위로 바람을 보내십니다(8:1).

이것은 현대의 읽기가 아니라 오래된 읽기입니다. 회당에서 읽히던 고대 아람어 번역인 타르굼 옹켈로스(Targum Onkelos)는 주님 앞에서 나온 바람이 물의 표면 위로 불었다고 말합니다. 몇몇 현대 번역은 “하나님에게서 온 바람”이나 “거센 바람”이라고 합니다.

Open Word Bible은 “하나님의 영”이라고 합니다. 다른 곳에서 이 표현은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 자신의 영을 가리킵니다(출애굽기 31:3, 사무엘상 10:10). 그리고 뒤따르는 동사 “맴돌다”는 신명기 32:11에서 독수리가 새끼들 위를 맴도는 데 쓰인 동사입니다. 이 동사는 바람보다는 살아 있는 존재에 더 잘 어울립니다. 시편 33:6은 하늘을 지으실 때의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숨을 함께 묶는데, 2절과 3절이 나란히 놓는 것도 바로 이 한 쌍입니다. 이 결정은 불확실로 표시되고, 각주가 “하나님에게서 온 바람”을 제시합니다. 직역 수준에서는 이 모든 것 아래에 있는 히브리어의 모양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땅은 형체 없음과 텅 빔이었고, 어둠이 깊은 물의 표면 위에 [있었으며], 하나님의 영께서 물의 표면 위를 맴돌고 계셨다.

창세기 1:2 · Open Word Bible, 직역 번역 근거와 함께 읽기 →

2절에는 알아 둘 만한 결정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 절은 “땅”을 동사보다 앞에 두는데, 이것은 이야기를 잠시 멈추고 장면을 묘사하는 히브리어의 방식입니다. 그래서 기록은 이것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의 상태, 곧 “땅은 형체가 없*었다*”로 읽고, 마치 이전의 창조가 망가지기라도 한 것처럼 “땅이 형체가 없게 되었다”로 읽지 않습니다. 3:1에서도 같은 구문이 상태를 묘사합니다. “뱀은 … 더 교활했다.”

“되었다”라는 읽기에도 나름의 역사가 있습니다. 1814년에 스코틀랜드의 설교자 토머스 차머스(Thomas Chalmers)는 당시 지질학자들이 묘사하던 긴 시대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려고 1절과 2절 사이에 긴 간격이 있다고 제안했고, 이 생각은 그다음 세기에 널리 퍼졌습니다. 기록은 이것을 과학을 근거로 거부하지 않습니다. 문법을 근거로 거부합니다. 2절은 이야기를 멈추고 장면을 묘사하며, 그 안의 어떤 말도 무엇이 망가졌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빛이 있어라”

3절은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말씀하시는 곳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빛이 있어라.” 그리고 빛이 있었다.

창세기 1:3 · Open Word Bible, 직역 번역 근거와 함께 읽기 →

명령과 그 결과는 한 동사의 두 형태, 곧 “있어라”와 “있었다”이므로, 결과를 보고하는 말이 명령을 글자 그대로 되풀이합니다. 직역 수준은 그 메아리를 살립니다. 균형은 “빛이 생겼다”, 쉬운 말은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라고 하여, 각각 결과에 고유한 동사를 줍니다. 이 유형은 장 전체를 관통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그분이 말씀하신 것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기록은 또한 빛은 첫째 날에 오고 해는 넷째 날에야 온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빛은 하늘의 광명체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서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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