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성경 번역은 그리스도인들이 만든 것이 아니었고, 라틴어나 영어로 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이 이집트에서 그리스어로 만든 것으로, 기원전 3세기에 시작되었습니다. 이 번역은 라틴어로 “칠십”을 뜻하는 말에서 온 칠십인역(Septuagint)이라고 불리며, 성경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왜 그리스어 성경인가?
기원전 330년대와 320년대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정복한 뒤, 그리스어는 동지중해의 공용어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땅 바깥에, 특히 알렉산드로스가 이집트에 세운 큰 도시 알렉산드리아에 큰 유대인 공동체들이 자라났습니다. 몇 세대가 지나지 않아, 알렉산드리아의 많은 유대인은 그리스어를 모국어로 쓰게 되었고 더 이상 히브리어를 쉽게 읽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모세의 율법을 듣고 공부하려면, 그것이 그리스어로 필요했습니다.
일흔두 사람의 전설
번역에 관한 전통적인 이야기는 아마도 기원전 2세기에 쓰인 아리스테아스의 편지라는 문서에 나옵니다. 이 문서에 따르면, 프톨레마이오스 2세 필라델포스(기원전 285–246년 재위) 왕이 알렉산드리아의 유명한 도서관에 둘 유대교 율법의 사본을 원했습니다. 그의 요청에 따라 예루살렘의 대제사장이 각 지파에서 여섯 명씩 학식 있는 장로 일흔두 명을 보냈고, 그들은 파로스섬에서 일흔두 날 만에 율법을 번역했으며, 그 번역은 유대인 공동체의 큰 환영을 받았다고 합니다.
뒤의 저술가들은 이 이야기를 부풀렸습니다. 기원후 1세기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철학자 필론은, 번역자들이 따로 작업했는데도 마치 영감을 받은 듯 똑같은 번역을 내놓았다고 말합니다(『모세의 생애』 2.37). 그는 자기 시대에도 유대인들과 다른 많은 사람이 해마다 파로스섬에 건너가 번역에 감사하는 축제를 열었다고 덧붙입니다(『모세의 생애』 2.41). 어떤 그리스도교 저술가들은 이 전설을 구약성경 전체로 넓혔습니다.
랍비들은 이 사건을 아주 다른 두 방식으로 기억했습니다. 바빌로니아 탈무드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이 일흔두 장로를 일흔두 개의 따로 떨어진 방에 넣었고, 각 사람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본문에 꼭 같은 작은 변경들을 했다고 전합니다(『메길라』 9a). 그보다 뒤의 소논문 『소페림』(1:7)은 토라가 그리스어로 쓰인 날이 이스라엘에게 금송아지를 만든 날만큼 힘든 날이었다고 말합니다. 토라는 제대로 번역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두 견해 모두 일리가 있습니다. 번역은 말씀을 퍼뜨립니다. 동시에 독자와 원문 사이에 무언가를 끼워 넣습니다.
학자들은 아리스테아스의 편지가 믿을 만한 역사 기록이 아니라 그 번역을 옹호하는 글이라는 데 동의합니다. 그러나 이 편지는 아마도 어떤 진실을 간직하고 있을 것입니다. 토라(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는 기원전 3세기에 알렉산드리아에서 그리스어로 번역되었고, 그 번역은 곧 그리스어를 쓰는 유대인들에게 권위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칠십”(일흔둘을 어림잡은 수)을 뜻하는 “칠십인역”이라는 이름은 처음에는 토라에, 뒤에는 그리스어 구약성경 전체에 붙여졌습니다.
번역들의 도서관
히브리어 성경의 나머지는 그 뒤 두 세기쯤에 걸쳐,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곳에서, 서로 다른 방법으로 번역했습니다. 기원전 132년 무렵 이집트에서 쓰인 벤 시라의 지혜서(집회서) 머리말에서, 번역자는 “율법 자체와 예언서들과 나머지 책들”도 그리스어로 읽으면 상당히 다르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칠십인역”은 하나의 번역이 아니라 하나의 모음집입니다. 토라의 대부분처럼 어떤 책들은 꽤 문자적으로 번역되었습니다. 다른 책들은 더 자유롭습니다. 욥기의 그리스어는 히브리어보다 약 6분의 1이 짧고, 잠언에는 덧붙인 부분이 있고 순서가 다릅니다. 다니엘서와 에스더서의 그리스어에는 추가된 단락들이 들어 있습니다. 모든 번역자는 또한 해석해야 했습니다. 출애굽기 3:14에서 모세에게 하신 하나님의 대답은 히브리어로 “나는 나다”인데, 그리스어는 egō eimi ho ōn, 곧 “나는 있는 이다”라고 읽습니다. 이 표현은 필론을 비롯해 그리스 철학을 아는 독자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순수한 존재에 관한 진술로 이해하도록 이끌었습니다. 번역은 결코 단순한 사본이 아닙니다. 그것은 첫 번째 주석이기도 합니다. 솔로몬의 지혜서와 마카베오상하처럼 처음부터 그리스어로 쓰였거나 그리스어로만 남아 있는 책들도 그리스어 성경 모음집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가톨릭과 정교회 그리스도인들이 제2정경이라고 부르고 개신교인들이 외경이라고 부르는 책들의 기원입니다(구약성경의 책들은 어떻게 모였는가를 보십시오).
첫 그리스도인들의 성경
초대 교회는 주로 그리스어를 썼고, 그 성경은 그리스어 구약성경이었습니다. 신약성경의 저자들이 구약성경을 인용할 때, 우리가 아는 히브리어와 다른 곳에서도 칠십인역에 가까운 그리스어 형태를 아주 자주 씁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 마태복음 1:23은 이사야 7:14를 “처녀가 잉태할 것이다”로 인용하는데, 칠십인역이 이미 “젊은 여자”를 뜻하는 히브리어 *almah*를 옮기는 데 쓴 그리스어 낱말을 사용합니다.
- 히브리서 10:5는 시편 40:6을 칠십인역을 따라 “주께서 나를 위하여 몸을 마련하셨습니다”로 인용합니다. 히브리어는 “주께서 내 귀를 파 주셨습니다”라고 읽습니다.
- 사도행전 15:16–17에서 야고보는 아모스 9:11–12를 칠십인역에 가까운 형태로 인용합니다. 칠십인역은 “나머지 사람들”이 주님을 찾는다고 말하는데, 마소라 본문은 “에돔의 남은 자”를 차지한다고 말합니다. “에돔”과 “사람”을 뜻하는 히브리어 낱말은 모음 글자 하나만 다릅니다.
Open Word Bible의 기록들은 이런 차이를 양쪽 방향에서 모두 보여 줍니다. 시편 40편(히브리어 번호로는 7절, 대부분의 영어 성경에서는 6절)에서, 구약성경은 히브리어에서 번역됩니다.
제사와 예물을 주님께서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귀를 주님께서 저에게 파 주셨습니다. 번제와 속죄제를 주님께서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기록은 귀를 파 준다는 것이 귀를 열어 주어 사람이 참으로 듣고 순종하게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하고, 히브리서가 이 절을 그리스어에서 인용한다고 적습니다. 히브리서에서는 신약성경이 그리스어 표현까지 있는 그대로 번역됩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세상에 들어오실 때에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제물과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저를 위하여 몸을 마련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0:5의 기록은 그리스어 시편이 “몸”이라고 읽는다는 것, 그리스어 사본 몇 개는 히브리어처럼 “귀”라고 한다는 것, 그리고 저자의 논증이 “몸”이라는 낱말에 기대고 있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어느 절도 다른 절에 맞추어 고치지 않습니다. 각각은 충실하게 번역되며, 근거가 독자에게 왜 둘이 다른지를 보여 줍니다.
이 인용들은 사도들이 그 청중이 알던 성경을 썼다는 것을 보여 주며, 그리스도교 선교사들은 그 뒤로 줄곧 그렇게 해 왔습니다. 또한 왜 칠십인역이 신약성경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지도 보여 줍니다. “언약”, “영광”, “의”, “주”를 뜻하는 그리스어 낱말들 같은 그 어휘가 사도들의 언어를 빚었습니다. 칠십인역의 그리스도교 사본들에서 하나님의 이름 YHWH는 대체로 “주”라는 뜻의 *kyrios*로 옮겨지는데, 이것이 “예수는 주님이시다”라는 신약성경의 고백의 배경입니다. 어떤 초기의 유대인 사본들은 다르게 했습니다. 기원전 1세기의 신명기 파피루스인 파피루스 푸아드 266(Papyrus Fouad 266)은 그리스어 본문 한가운데에 하나님의 이름을 히브리 글자로 적습니다. 처음 번역자들이 어느 관행을 따랐는지에 대해 학자들은 아직도 논쟁합니다.
개정판과 경쟁 번역들
그리스도인들이 칠십인역을 쓰고 그것을 근거로 논증했기 때문에, 기원후 2세기의 몇몇 유대인 학자는 히브리어 본문을 더 가까이 따르는 새 그리스어 번역들을 만들었습니다. 아퀼라, 심마쿠스, 테오도티온의 번역입니다. 이 과정은 더 일찍 시작되었습니다. 기원 전후 무렵에 필사된 나할 헤베르의 그리스어 소예언서 두루마리는 칠십인역을 히브리어 쪽으로 고친 유대교의 개정판을 보여 줍니다. 1963년에 출간된 도미니크 바르텔레미(Dominique Barthélemy)의 이 두루마리 연구는 이 분야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3세기에 그리스도교 학자 오리게네스는 헥사플라(Hexapla)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히브리어 본문, 그리스어 음역, 아퀼라, 심마쿠스, 칠십인역, 테오도티온을 여섯 개의 나란한 단에 배열한 방대한 작품입니다. 오리게네스는 칠십인역에 히브리어에 없는 내용이 있는 곳과, 히브리어에 있는 내용이 칠십인역에 없는 곳을 표시했습니다. 헥사플라 자체는 사라졌지만, 그 영향은 뒤의 칠십인역 전승을 빚었습니다.
칠십인역의 거의 완전한 사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4세기와 5세기의 위대한 그리스도교 코덱스들, 곧 바티칸 사본, 시나이 사본, 알렉산드리아 사본입니다(시나이 사본과 바티칸 사본을 보십시오). 많은 조각은 그보다 훨씬 오래되었고 유대인들이 필사한 것입니다. 가장 오래된 것은 지금 맨체스터에 있는 신명기의 작은 조각 여덟 개인 파피루스 라일랜즈 458(Papyrus Rylands 458)로, 기원전 2세기 중엽의 것으로 봅니다.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의 그리스어 조각들은 사해 사본 가운데서도 발견되었는데, 가장 이른 것은 기원전 100년 무렵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칠십인역을 사용한 것은 뒤의 논쟁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히에로니무스가 구약성경을 히브리어에서 라틴어로 번역했을 때, 아우구스티누스는 칠십인역을 떠나면 교회들이 갈라질까 걱정했습니다(히에로니무스와 불가타를 보십시오).
히브리어 본문의 증인
칠십인역은 남아 있는 어떤 마소라 사본보다도 훨씬 오래된 히브리어 사본들에서 번역되었기 때문에, 히브리어 본문의 귀중한 증인입니다. 칠십인역이 마소라 본문과 다른 곳에는 여러 가능성이 있습니다. 번역자가 히브리어를 잘못 읽었을 수도 있고, 해석했을 수도 있고, 풀어 옮겼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 번역자는 다른 히브리어 본문을 충실하게 옮기고 있었습니다.
1947년 이전에는 어느 쪽인지 가려내기가 흔히 어려웠습니다. 사해 사본이 그것을 바꾸었습니다. 사무엘서와 예레미야서 같은 책들에서, 쿰란의 히브리어 두루마리들은 마소라 본문에 맞서 칠십인역과 일치하며, 그리스어 번역자들이 다르게 읽히는 히브리어 사본들을 가지고 있었음을 증명합니다(사해 사본이 보여 주는 것을 보십시오). 에마누엘 토브(Emanuel Tov)는 칠십인역을 마소라 본문과 다른 히브리어 읽기를 재구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단일 자료라고 설명합니다.
칠십인역을 잘 쓰려면 솜씨가 필요합니다. 본문비평가는 먼저 번역자가 어떤 히브리어를 읽고 있었는지를 밝혀내야 하는데, 그러려면 그 번역자가 대개 어떻게 작업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야 그 히브리어 읽기를 마소라 본문의 읽기와 견주어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칠십인역
칠십인역은 지금도 동방 정교회의 공식 구약성경입니다. 학자들에게 표준 판본은 알프레트 랄프스(Alfred Rahlfs)의 소형 판본(1935, 2006년 로베르트 한하르트[Robert Hanhart] 개정)과, 1931년부터 괴팅겐에서 준비해 왔고 아직 진행 중인 대형 비평 판본입니다. 영어 번역인 칠십인역 새 영어 번역(New English Translation of the Septuagint, NETS)이 2007년에 나왔습니다.
Open Word Bible에서 칠십인역은 두 가지 역할을 합니다. 신약성경의 저자가 구약성경을 인용할 때, 근거 기록은 그 인용이 히브리어가 아니라 그리스어를 따르는 곳을 밝힐 수 있고, 이것은 독자가 겉보기의 차이를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그리고 구약성경에서, 칠십인역이 때로 사해 사본의 뒷받침을 받아 많은 학자가 마소라 본문보다 이르다고 생각하는 읽기를 보존하는 곳에서는, 그것을 따를지 말지의 결정이 공개적으로 내려지고 설명됩니다.
참고 문헌
- Barthélemy, Dominique. Les Devanciers d’Aquila. Supplements to Vetus Testamentum 10. Leiden: Brill, 1963.
- Babylonian Talmud, tractate Megillah 9a; Soferim 1:7.
- Dines, Jennifer M. The Septuagint. London: T&T Clark, 2004.
- Fernández Marcos, Natalio. The Septuagint in Context: Introduction to the Greek Versions of the Bible. Translated by Wilfred G. E. Watson. Leiden: Brill, 2000.
- Jobes, Karen H., and Moisés Silva. Invitation to the Septuagint. 2nd ed. Grand Rapids: Baker Academic, 2015.
- Law, Timothy Michael. When God Spoke Greek: The Septuagint and the Making of the Christian Bible.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3.
- Philo. On the Life of Moses 2.25–44.
- Pietersma, Albert, and Benjamin G. Wright, eds. A New English Translation of the Septuagint.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7. Free online.
- Tov, Emanuel. The Text-Critical Use of the Septuagint in Biblical Research. 3rd ed. Winona Lake, IN: Eisenbrauns, 2015.
- Wright, Benjamin G., III. The Letter of Aristeas. Commentaries on Early Jewish Literature. Berlin: de Gruyter, 2015.
- 성경 인용은 이 글이 직접 옮긴 것이며, 인용 상자 안의 본문은 Open Word Bible입니다.